한일이념교류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에 관한 보고

 

韓日理念交流「働き方改革」についての報告

한일이념교류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에 관한 보고

 

2018/11/12

合同一般労働組合全国協議会幹事・群馬合同労働組合委員長  清水彰二

 

합동일반노동조합 전국 협의회 간사・군마 합동 노동조합 위원장 시미즈 쇼지

 

1 自己紹介 자기소개

群馬合同労働組合の委員長、清水彰二と申します。

안녕하세요. 저는 군마합동노동조합 위원장을 맡고 있는 시미즈 쇼지입니다.

 

合同一般労働組合全国協議会の幹事、それから旭非正規職支会支援共闘会議事務局長もやっています。

합동일반노동조합전국협의회 간사와 아사히 비정규직지회지원공투회의 사무장으로서도 현재 활동하고 있습니다.

 

群馬県は東京から北へ100キロのところにあります。

군마현은 도쿄에서 북으로 100키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合同労組というのは個人で加盟できる労働組合です。

합동노동조합은 개인으로 가입할 수 있는 노동조합입니다.

 

地域単位、業種単位、雇用形態単位などで組織されます。

지역, 업종, 고용 형태별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職場に労働組合がない、あっても信頼できない、非正規雇用で組合に入れない、などという理由で、合同労組に相談・加入する労働者が増えてきています。

 

직장에 노조가 없다거나 있어도 노조를 신뢰할 수 없다, 또는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합동노조에 문의・가입을 하는 노동자가 최근 늘어나고 있습니다.

 

群馬合同労働組合は結成して13年、組合員は50人余りの小さな組合です。

動労千葉とともに闘える地域の合同労組を作ろうということで結成しました。

 

군마공동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지 13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약 50명 정도의 조합원이 노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규모적으로 봤을 때 굉장히 작은 조직이죠.

 

私もアルバイトをしながら、組合活動をしていますが、アルバイト先で労働条件の一方的な切り下げに抗議して解雇され、闘った経験があります。

 

저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노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항의를 했다가 해고되어 투쟁한 경험이 있습니다.

 

組合は中央タクシーという分会を中心に闘っています。

自宅から空港まで送迎する乗合タクシーを運行する会社です。

 

우리 합동노조는 중앙택시라는 택시회사 분회를 중심으로 투쟁하고 있습니다.

중앙 택시는 손님 자택에서 공항까지 픽업을 하는 합승 택시 회사입니다.

 

「固定残業代」という制度で労働時間をごまかし、過労死や事故で運転手や乗客を殺しかねない会社でした。

 

‘고정잔업비’라는 제도로 노동시간을 왜곡하여 과로사와 사고로 운전사나 승객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러한 위험한 회사였습니다.

 

パワハラもありました。3人で分会を作って闘いを始めました。

 

권력형 괴롭힘 피해 사례도 있었습니다. 3명으로 분회를 만들어 투쟁을 시작하였습니다.

 

組合つぶしの運転業務外し、残業手当カットなどの攻撃と闘いながら勝利してきました。

全国に同じような合同労組が組織され、2010年に合同一般労働組合全国協議会を結成しました。

 

노조 파괴를 위한 운전기사의 운전업무 제외나 잔업 수당 삭감을 비롯한 공격이 가해졌지만 우리를 투쟁해서 승리를 쟁취해 왔습니다.

일본 전역에서 우리와 비슷한 합동노조들이 조직되면서 2010년에는 합동일반노동조합전국협의회를 결성했습니다.

 

職場で団結して、資本と闘う労働組合を作ろうと、努力しています。

日本の法律では、職場にたった一人でも、合同労組に加入すれば、団結権が保障されます。

 

직장에서 단결하며 자본에 맞서 투쟁하는 노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 법률의 경우, 직장에서 단 한 명이라도 합동노조에 가입하고 있으면 단결권이 보장됩니다.

 

加入通告をして、要求書を提出すれば、団体交渉を行う義務が、雇用主にはあります。

拒否をしたり、不誠実な対応を行えば、「不当労働行為」として、労働委員会に救済の申し立てを行うことができます。

このような権利をも活用しながら、職場に闘いを組織しています。

 

회사측에 가입 통보를 하고 요구서를 제출하면 단체협상을 할 의무가 고용주에게 생기합니다. 이를 거부하거나 불성실한 태도를 취할 경우, ‘부당노동행위’로서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권리도 이용하면서 우리는 직장에서 투쟁을 조직해 왔습니다.

 

2 日本の新自由主義と労働運動の状況 (일본을 둘러싼 신자유주의와 노동운동의 상황)

 

日本における労働運動は、国鉄分割民営化を転換点として、大きく後退してきました。

日本における争議行為を伴う争議の件数は、1974年の9581件をピークに、2016年66件と激減しています。(厚生労働省の2016年調査による)

 

일본의 노동운동은 국철분할민영화를 계기로 크게 후퇴되었습니다.

쟁의 투쟁 건수는 1974년에 9천 5백 81건으로 절정을 찍은 후, 2016년 66건을 기록하는 등 계속해서 감소 추세에 있습니다.

 

1989年にナショナルセンターの「総評」(日本労働組合総評議会)が解散して「連合」(日本労働組合総連合会)に合流してから、桁違いの落ち込みになりました。

「総評」の労働運動は、労働者の闘いと団結こそが、労働者の生活を守るという労働運動でした。

 

1989년 네셔널 세터인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가 해산하며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에 통합되면서 급격하게 쟁의 건수가 떨어졌습니다.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는 노동자의 투쟁과 단결이 노동자의 삶을 지킨다는 이념을 가지고 노동운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連合」の労働運動は、会社の発展が労働者の生活を向上させる、会社と労働組合はパートナーという労働運動です。

動労千葉は、総評時代は重要な役割を果たしましたが、連合には行きませんでした。

 

반대로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는 사회 발전이 노동자의 생활을 향상시킨다는 이념을 가지고 회사와 노조는 파트너임을 강조하며 노동운동을 전개해온 조직이었습니다.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 시절 전투적으로 투쟁을 조직했던 도로치바는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에 합류하지 않았습니다.

 

しかし連合の中からも、外からも職場に闘いを組織しようと、労働組合と活動家のネットワークとして全国労働組合交流センターを組織しています。

 

이러한 가운데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안팎에서 직장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노동조합과 활동가가 손을 잡고 활동하는 전국노동조합교류센터라는 것도 생겨놨습니다.

 

連合の時代になって、労働組合から闘争が一掃されました。

それから30年が経ちました。一世代が交代する時間の長さです。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시대에 들어서면서 노동조합에서 투쟁이 일소되었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라는 세원이 지났습니다. 한 세대가 교체될 정도로 긴 세월이 지났습니다.

 

「労働者階級」という物事の見方、イデオロギー、団結や闘争というイメージさえ社会的に消えてしまうくらいの困難があります。

そもそも日本の労働組合を理解する上で、戦後の日本的経営システムがどのようなものであったのかを説明したいと思います。

 

지금 일본 사회에서는 ‘노동자계급’이라는 개념이나 이데올로기, 단결과 투쟁이라는 이미지, 의식마조도 희미해졌습니다.

여기서 일본 노동조합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전후의 일본 경영시스템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賃金体系は年功賃金制度でした。年齢と学歴に応じて賃金額と賃金上昇比率が規定され,勤続年数に伴って基本賃金が上昇する賃金形態です。

 

일본은 연공임금제(호봉제 임금체계)를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연령과 학력에 따라 임금액과 임금상승률이 규정되어 근무 연수에 따라 기본급이 달라지는 임금 형태입니다.

 

これと終身雇用、企業内労働組合の3つを特徴として「日本的経営」「日本型労使関係」と呼びました。

国鉄分割民営化は国鉄労働者の解雇を国家が強行して、労働組合と労働者の団結を解体し、終身雇用制度を解体し、規制緩和と構造改革のふたを開けました。

 

이러한 연공임금제도와 종신고용, 그리고 기업 내 노동조합이라는 3가지 특징은 ‘일본식 경영’, 또는 ‘일본형 노사관계’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そういう点で国鉄分割民営化が日本の転換点になりました。

国鉄分割民営化を行った当時の首相、中曽根康弘は、右翼軍国主義者でした。

 

아까도 말씀 드렸다시피 일본의 노동운동은 국철분할민영화가 계기가 되어 크게 후퇴되었습니다.

국철분할민영화를 강행한 당시의 총리, 나카소네는 우익 군국주의자였습니다.

 

戦争と軍隊の放棄をうたった戦後憲法を葬り去って、再び天皇の軍国主義国家としての再生を悲願としていました。

中曽根は、それを実現するためには、総評労働運動の解体が必要であり、そのためには中心になっていた国鉄労働運動を壊滅する必要があると考えました。

 

전쟁 포기와 군대 해산을 약속한 전후 헌법을 없애버리고 또 다시 천황의 군국주의국가로서 일본이 부활하기를 염원하던 인물이었습니다.

 

나카소네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 노동운동의 해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핵심적 구실을 하고 있었던 국철 노동운동을 파괴하기로 하였습니다.

 

本人がその狙いを後に語っています。

そこで出した策が、日本国有鉄道を民営化する、いったん全員解雇するという手口でした。

 

나카소네 본인이 후에 국철 노동운동 탄압의 목적과 그 수법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만 나카소네는 일본 국유 철도를 민영화함으로써 일단 모든 직원을 해고하는 수법을 쓰기로 한 것입니다.

 

そのやり方は、3人のうちの1人は新会社に行けないと打ち出して、労働組合の屈服と協力を引き出すというものでした。

それまでストライキ闘争の中心であった「動力車労働組合」は、自分たちの雇用を守るために、階級的労働運動から転向して、当局と一体化して他組合の組織破壊の手先に転落しました。

 

직원 3명 중 한 명을 새로운 회사에서 근무하지 못하게 하여 노동조합의 굴복과 협력을 유도했습니다. 전투적인 파업 투쟁을 전개했던 ‘동력차노동조합’은 자신들의 고용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취해온 계급적 노동운동 노선을 버리고 결국 국가와 함께 다른 노동 조합에 대한 공격을 가하게 되었습니다.

 

反対する労働組合の組合員には見せしめの不当配転と処分が乱発され、いじめが横行しました。200人が自殺に追いやられました。

 

민영화에 의의를 제기한 노조 조합원에게는 보여주기식으로 부당 배치 전환과 처분 등이 가해지고 왕따가 시작되었습니다.  200명을 자살로 내몰았습니다.

 

最大組合の「国鉄労働組合」は、ストライキひとつ決断できず、団結して闘えずに組織の弱体化をもたらしました。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국철 노동조합’은 파업 한 번 못하고 단결해서 투쟁하지 못한 채 결국 조직이 그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もともと「動力車労働組合」の千葉地方本部であった動労千葉は、1979年の分離独立のすえに、1985年、1986年の2回にわたる渾身のストライキに立ち上がり、40人の報復解雇という犠牲を出しながら、団結と組織を守りました。

 

원래 ‘동력차노동조합’지바지역 본부였던 도로치바는 1979년에 독립한 후 1985년과 1986년, 두 번에 걸쳐 파업을 실시해 40명 해고라는 보복을 당하면서도 조직을 지키는 데 온 힘을 다했습니다.

 

しかし、国鉄分割民営化の総括ができず、総評は「闘っても勝てない」と崩壊、連合への合流に向かいます。

国鉄を頂点に、民営化の波は、電信電話公社(1985年)、郵政公社(2005年)などに広がり、国や地方公共団体が経営するあらゆる企業、特殊法人に及んでいます。

 

그러나 국철분할민영화를 막아내는 데 실패하자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는 투쟁해 봤자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와 합류하게 됩니다. 국철을 시작으로 민영화의 물결은 전신전화공사, 우정공사 등에도 널리 번져 국가와 지방공공단체가 운영하는 기업과 특수법인에도 그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それとセットで「規制緩和」を政府、政治家が競い合う政治状況があります。英語の本来のことばderegulation の意味は規制撤廃ですが、政府は「規制緩和」と言い換えました。

 

이러한 움직임과 함께 정부와 정치인들은‘규제완화’를 강력히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원래 영어로는 deregulation , 규제철폐라는 뜻이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규제완화’라는 말로 번역해 교묘하게 용어를 바꿨습니다.

 

それは、社会全体の徹底した外注化・アウトソーシングに道を開き、非正規職化とブラック企業化が際限なく進行する状況を作り出しています。これを資本家階級は「成長戦略」と称して、競い合っている状況です。この状況は韓国でも、世界中でどこでも、同じであろうと思います。

 

규제완화는 철저한 외주화를 초래하고 비정규직화와 악독 기업이 만연하는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이를 자본가계급들은 ‘성장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예쁘게 보장해 서로 앞다투어 추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전세계적으로 비슷할 것입니다.

 

国鉄分割民営化で重要なことは、一つは、雇用破壊です。国鉄分割民営化は、公務員である国鉄職員をいったん全員解雇するというやり方でした。

 

국철분할민영화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용 파괴입니다.

국철분할민영화는 공무원인 국철 직원을 일단 전원 해고하는 수법을 썼습니다.

 

 

公務員である国鉄職員は、争議権は制限されますが、雇用は厳しく守られていました。

中曽根はこれにあえて手をつけたのです。

政府が民営化と規制緩和にかじを切り、率先して労働者の解雇をやってみせるということでした。

 

공무원인 국철 직원의 경우, 쟁의권이 제한되어 있어도 고용만큼은 절대적으로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나카소네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습니다. 정부가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강력히 추진하고 노동자 해고를 주도한 것입니다.

 

公務員の労働組合が主力をなしていた、総評を解体する重要な意味を持ちました。雇用破壊は、非正規職化に道を開きます。

 

공무원 노동조합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를 해체하는 것이 정부 입장으로서는 핵심 과제였습니다. 고용 파괴는 결국 비정규직화의 길을 열었습니다.

 

中曽根は、国鉄分割民営化と一体で、労働者派遣法を1985年に成立させ、1986年から施行させました。対象業務を13に限定してスタートした派遣法は、適用業務の拡大を続け、1999年に「原則自由化」、2004年に「製造派遣」解禁となって、工場労働に派遣が導入されるにいたりました。

 

나카소네는 국철분할민영화와 함께 노동자파견법을 1985년 통과시켜 1986년 이를 시행했습니다. 처음에는 13개 업무를 대상으로 삼았지만 점차 그 대상 범위를 넓혀 나가 1999년에는 ‘원칙 자유화’, 2004년에는 ‘제조업’도 그 대상으로 포함시켜 공장 노동에 파견직 노동자가 대거 유입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大企業は、経営戦略にアウトソーシングを組み込むのが当たり前になりました。

2008年のリーマンショックで、経営危機に陥った企業は、「派遣切り」、派遣労働者の雇止めなどで危機の乗り切りをはかりました。

 

대기업들이 경영 전략으로서 외주화를 적극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에 일어난 리먼쇼크로 인해 경영난에 처한 기업들은‘파견 노동자 해고’와 고용 중단 등으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派遣労働者が解雇された上、寮を追い出され、ホームレス化する状況が社会問題化しました。

この時に私たち合同一般労働組合全国協議会は各地で派遣労働者の闘いを組織して、派遣先でのストライキも組織して闘いました。

 

파견 노동자들이 직장 해고와 기숙사 퇴거를 당하면서 노숙자가 되는 상황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때 우리 합동일반노동조합전국협의회도 파견직 노동자와 함께 투쟁을 조직하고 파업에 나섰습니다.

 

派遣労働者を「救済してあげる」対象とするのではなく、闘いの主体として組織しようという挑戦でした。この経験は、大きな意味を持ちました。

 

파견직 노동자를 ‘도와준다’는 개념이 아니라 투쟁의 주체로서 조직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2009年、総選挙で自民党が大敗、民主党政権が誕生します。2012年まで続きます。

 

2009년 총선으로 자민당이 참패하고 민주당 정권이 생겼습니다. 이 정권이 2012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この中で労働契約法が改定され、「5年ルール」として、非正規労働者に5年継続雇用された場合、無期転換申込権が与えられることになりました。今年の4月から適用になりました。

 

민주당 정권 하에서 노동계약법이 개정되어 이른바‘5년 룰’이라고 불리는 규정이 생겼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5이상 근무한 자는 무기한 고용을 신청할 수 있다는 제도인데요, 올해 4월부터 시행되었습니다.

 

しかし、実際には5年の雇用延長の直前に雇止めがされる現実、法律を無視したり抜け道を作る現実、非正規労働者が泣き寝入りさせられる現実があります。

私たちは、労働組合に結集して、無期雇用を要求して闘おうと呼びかけましたが、大きな流れを作ることができていません。

 

하지만 연장 직전에 고용이 중단되거나 고용주가 법률을 무시하는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요구와는 달리 정규직 전환이 모처럼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노동조합이 힘을 모아 무기한 고용을 위해 투쟁하자고 주장하였지만 결국 큰 흐름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派遣法は、同じ派遣労働者を3年をこえて継続派遣することを禁止する一方、人を入れ替えれば期限なしに派遣を継続できるように改悪されました。今や日本の非正規率は37.3%です。1984年は15.3%、1989年は19.1%でした。

 

파견법은 같은 파견직 노동자를 3년 이상 연속적으로 파견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개악되었습니다. 일본의 비정규직 비율은 1984년 15.3%, 1989년 19.1%였던 것이 지금은 37.3%까지 급증했습니다.

 

さらに日本の雇用状況をみるときに、外国人労働力を、安くて、使い捨てのきく、無権利な労働者として導入する政策があります。

 

게다가 지금 일본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그들의 권리를 전혀 무시한 채 싼 값에 고용하고, 쓰고 버리는 식으로 이용하는 정책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1990年には出入国管理及び難民認定法改訂によって日系外国人労働力導入が行われました。

外国人技能実習制度による詐欺的で奴隷的な外国人労働力導入も拡大してきました。

現在行われている国会では、改憲問題とともに、入管法の改訂によって、「特定技能1号」「特定技能2号」という在留資格を新設しようとしています。

 

1990년에는 출입국관리 및 난민 인정법이 개정되면서 닛케이진이라고 불리는 일본계 브라질인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 노동자가 다수 일본에 입국했습니다. 한국의 고용허가제에 해당되는 외국인기능실습생제도를 악용한 불법 사기 행위와 노예제라고도 할 수 있는 외국인 노동력 투입이 추진되었습니다.

현재 국회에서는 헌법 개정 문제와 함께 입국관리법을 개정함으로써 새로운 체류 자격을 마련하는 계획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外国人労働者を都合よく導入して使い捨てることのできる労働力として、大規模な導入が狙われています。こうした動きは日本の労働者の不安定化、低賃金化、分断に拍車をかけています。

외국인 노동자를 쓰고 버리는 노동력으로서 이용하려고 하는 대규모 법 개정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노동시장의 불안정과 저임금,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3 新自由主義を推進するべく登場した安倍政権

신자유주의를 추진하기 위해 등장한 아베 정권

 

本題の安倍政権の「働き方改革」ですが、まずこのような新自由主義の流れを徹底的に貫徹するものとしてそれがあることを押さ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安倍は極右の歴史修正主義者であることは前提にさせていただきます。

 

이제 오늘의 주제인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요, 우선 이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이 신자유주의 흐름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베가 극우 역사 수정주의자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여기에 계시는 분들이 이미 다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하고 이야기를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それと一体で、それを支えるものが、新自由主義による労働組合と団結の破壊です。

すでに日本の資本家階級の基本路線として、9割を非正規職化するという報告が打ち出されています(1995年日本経営者団体連盟の「労働問題研究会報告」)。

 

신자유주의는 노동조합과 노동자 단결을 방해합니다. 1995년에 발표된 노동문제 연구회 보고를 보면 일본 자본가계급이 노동자의 90%를 비정규직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国鉄分割民営化以降の31年は、民営化・外注化・非正規職化の新自由主義との、労働者の労働権と団結権をかけた闘いでした。2001年には小泉純一郎内閣が誕生します。

 

국철분할민영화 이후의 31년은 민영화와 외주화, 비정규직화, 신자유주의와의 싸움이었습니다. 2001년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이 탄생했습니다.

 

「構造改革なくして景気回復なし」をスローガンに、道路関係四公団・石油公団・住宅金融公庫・交通営団など特殊法人の民営化などと、「聖域なき構造改革」を打ち出し、郵政三事業の民営化を行いました。

 

‘구조개혁 없이 경기 회복은 기대할 수 없다’는 슬로건을 내걸어 석유공단. 주택금융공고, 교통영단 등 특수 법인 민영화를 추진하는 ‘성역 없는 구조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우정 3사업의 민영화를 추진하였습니다.

小泉内閣の経済財政政策において中心的役割を果たした竹中平蔵は「規制改革と官業の民間開放が、成長戦略の基礎である」と言いました。

小泉のやり方は「古い自民党をぶっ壊して政治経済の構造改革を行う」「抵抗勢力を一掃する」という劇場型パフォーマンスでした。

 

고이즈미 내각 경제재정정책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다케나카라는 인물은 ‘규제개혁과 공공부문의 민간 개방이 성장전략의 기초를 이른다’라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고이즈미는‘낡은 자민당을 없애고 정치경제의 구조개혁을 실시한다’, ‘저항 세력을 일소하겠다’는 쇼를 한 것입니다.

 

これは、新自由主義によって、旧来の生活基盤を破壊され、「就職氷河期」に見舞われ、不満が鬱積していた民衆の変革への期待を集め、「小泉旋風」を巻きおこしました。

安倍晋三は、小泉内閣の時に、自民党幹事長に異例の抜擢をされ、自民党幹事長に就任しました。

 

이러한 고이즈미의 퍼포먼스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로 인해 생활기반을 잃고 ‘취업난’에 처한 민중들 사이에서 잘 먹혔습니다. 불만에 가득 찬 민중 사이에서 ‘고이즈미 선풍’이 일어났습니다.

아베는 고이즈미 내각 시절, 자민당 간사장으로 이례적인 발탁을 받고 취임했습니다.

 

そして小泉の任期満了に伴う後継総裁として、2006年に第一次安倍内閣を発足させ、小泉構造改革を引継ぎ加速させる方針を打ち出しました。そして労働市場改革を構造改革の最大の柱の一つに位置づけました。

 

그리하여 고이즈미의 임기 만료에 따른 후계 총재로서 2006년 제1차 아베 내각이 출범되었고 아베는 고이즈미가 내건 구조개혁을 그대로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아베는 노동시장 개혁을 구조개혁의 핵심 골자 중 하나로서 자리매김시켰습니다.

 

そして第一次安倍内閣は「労働ビッグバン」を打ち出します。ここであげられた項目は、ニートやフリーターの戦力化、女性や高齢者の就業率向上、正規雇用と非正規雇用の区別の撤廃、非正規雇用に対する保険・年金の付与、「同一労働同一賃金条件」の法制化、「金銭解雇ルール」の法制化、ホワイトカラーエグゼンプションの導入、ワーク・ライフ・バランスの実現、などでした。

 

 

제1차 아베 내각은 이른바‘노동 빅뱅’을 내세웠습니다.

제1 아베내각에서는 알바이트만으로 먹고 사는 프리터라고 불리는 사람이나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인 니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핵심 전력으로 이용하는 전략, 그리고 여성과 고령자의 취업 향상, 정규고용과 비정규 고용 구별 철폐, 비정규직에 대한 연금 및 연금 부여,‘동일노동동일임금 조건’법제도화, 부당해고에 대한 금전해결제의 법제도화, 근로시간 적용제외, ‘일과 삶의 균형’ 실현 등을 달성 목표로 세웠습니다.

 

この構造改革の主眼は「終身雇用、年功序列という雇用形態への偏重から訣別し、同一労働同一賃金の原則の確立に取り組むべき」(竹中平蔵)というものです。しかしこれは頓挫しました。

 

구조개혁의 진정한 목적은 ‘종신고용과 호봉제라는 고용형태를 벗어나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 확립’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결국 실패를 겪게 됩니다.

 

これについて竹中平蔵は「既得権益を失う労働組合や、保険や年金の負担増を嫌う財界の反対で頓挫した」と語っています。安倍は2007年9月に潰瘍性大腸炎を理由に首相を辞任、後を受けた麻生政権の2009年総選挙で大敗し、民主党に政権の座を奪われました。しかし2012年12月の総選挙で政権に返り咲き、第2次安倍内閣が始まりました。

 

후에 다케나카는 ‘기득 권익을 잃게 되는 노동조합이나 보험, 연금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꺼리는 재계의 반대 때문에 실패했다’며 실패 이유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아베는 2007년 9월, 궤양성 대장염을 이유로 총리직을 사임하였고 2009년 총선에서 큰 패배를 겪게 됩니다. 하지만 2012년 12월, 총선에서 다시 정권을 되찾았고 제2차 아베 내각이 출범했습니다

 

4 安倍政権の「働き方改革」

정권의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

  • 労働者保護規制の撤廃が本質

노동자보호규제 철폐가 목적

 

今年6月に国会で成立した「働き方改革関連法」も、第一次安倍内閣がやろうとした労働市場の構造改革の貫徹であり、その核心に労働者の保護規制と団結を解体する思惑が貫かれています。

 

올해 6월에 국회에서 통과된 ‘일하는 방식 개혁 관련법’은 제1차 아베 내각 때부터 노렸던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달성하기 위한 수법이었고 노동자 보호 규제 철폐와 단결을 저지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 「高度プロフェッショナル制度」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라고 불리는 탈시간급제 특례

 

  1. ‘노동빅뱅’에서는 ‘화이트칼라 이그젠프션’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잔업비 제로법.
  2. 도입 대상을 연 수입 1075만엔 이상의 고도전문직으로 하고 본인의 동의를 조건으로 함.
  3. 시오자키 후생노동성 장관 “작게 낳아 크게 키운다”
  4. 경단련은 연수 400만엔 이상이라고 주장, 연수 인하와 직종 확대를 노림.
  5. 노동기준법이 정하는 근로시간・휴식・휴일・심야 할증 임금 등의 규정 해체.
  6. 8시간 노동제 해체를 노림.

 

  • 裁量労働制の拡大

재량노동제 확대

  1. 제도 확대를 노렸지만 데이터 조작 사실이 드러나 결국 실패함.
  2. 업무수행방법이 근로자 재량에 따라 달라지는 업종에 한하여 실제 노동시간이 아닌 “노동시간”으로 근로시간을 관리하는 것을 인정하는 제도.
  3. 도입된 ‘전문업종형’ (1988년 도입 19개 업무)와 ‘기획업무형'(2000년 도입) 중 ‘기획업무형’에 과제해결형 제안영업’ 등을 추가하는 것을 노림.
  4. 보다 넓은 영업직으로 그 범위를 확대하려는 의도가 있음. ‘덴츠’에서 과로사한 여성 노동자가 바로 이 직종에 종사하고 있었음.
  • 同一労働同一賃金

동일노동동일임금

  1. 일하는 방식 개혁의 핵심 정책으로서 내세움.
  2. 노동자파견법 파트근로법 노동계약법에 직무내용 성과 의욕 능력 또는 경험 등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대우를 결정한다는 등의 조문을 삽입.
    3. “
    정규, 비정규라는 고용 형태에 좌우되지 않는 균등·균형 잡힌 대우를 확보. 그리고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실현을 위해 노력“( “1억총활약플랜“)
    4.
    능력주의 평가제도. 노동과 직무수행 능력을 자본의 경영 컨설턴트가 점수를 매겨 임금을 결정하는 방식. 단결의 파괴.
    5.
    연공제 임금의 해체
    6.
    일본의 노동자계급이 쟁취한 생활급 임금체계 파괴
    7.
    연합이나 전국노동조합총연합도 공격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격차시정으로 평가.

 

  • 「働き方改革」の旗印のように掲げる
  • 労働者派遣法・パート労働者法・労働契約法に「職務内容、成果、意欲、能力または経験などを公正に評価し待遇を決定する」などの条文を盛り込む。
  • 「正規か、非正規かといった雇用の形態にかかわらない均等・均衡待遇を確保する。そして同一労働同一賃金の実現に踏み込む」(『一億総活躍プラン』)
  • 能力主義の評価制度。労働と職務遂行能力を資本の経営コンサルタントが点数をつけて賃金を決める。団結の破壊。
  • 年功制賃金の解体
  • 日本の労働者階級が勝ち取ってきた生活給としての賃金体系の破壊
  • 連合や全労連(全国労働組合総連合)も攻撃の本質をとらえず「格差是正」と評価

 

  • 労働者のための改革という粉飾

노동자를 위한 개혁이라는 속임수

 

第一次安倍内閣において「労働ビッグバン」が頓挫した経歴のある安倍は、「労働者が働きやすくするための改革」という粉飾を施して、同じ目的を果たそうとしました。

제1차 아베 내각에서 “노동 빅뱅”개혁의 실패를 겪은 아베는 ‘노동자가 일하기 편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개혁’이라는 속임수를 써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습니다.

 

「一億総活躍社会」「長時間労働是正」(「残業時間の上限規制」)「同一労働同一賃金」などです。

 

‘1억총활약사회’나 ‘장시간노동제정’(‘잔업시간 상한규제’), ‘동일노동 동일 임금’ 등이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 同一労働同一賃金

동일노동 동일임금

“동일노동동일임금”은 앞서 언급한 대로, 전후 일본의 기본 임금체계인 연공임금 제도 해체를 노리는 제도이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책으로서 정부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연합, 일본 공산당·전국노동조합총연합, 사회민주당·전국노동조합연락협의회도 비정규직 차별 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동일노동동일임금”정책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同一労働同一賃金」はすでに触れたとおり、戦後の日本の基本形態であった年功賃金制度の解体ですが、非正規職労働者の処遇改善として押し出しました。

連合、日本共産党・全労連(全国労働組合総連合)、社会民主党・全労協(全国労働組合連絡協議会)も非正規差別反対という立場から、「同一労働同一賃金」には反対していません。

 

  • 残業時間上限規制

잔업 시간 상한 규제

 

아베는 “일하는 방식 개혁”의 목적이 마치 노동시간 개선인 것처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잔업 시간 상한 규제”를 월 100시간까지 합법화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과로사 인정 기준은 월 80시간입니다. 게다가 휴일 노동이 연간 상한 역시 예외로서 제외되었습니다. 또한 가장 엄격한 규제가 필요한 건설업이나 자동차 운전 업무·연구개발·의사는 상한 규제 적용 제외 대상입니다. 가족을 과로사로 잃은 사람들이 만든 “과로사유족모임”은 과로사를 합법화하는 법안이라며 강하게 규탄했습니다.

 

安倍は「長時間労働の是正」を「働き方改革」の目的であるかのように装いました。

しかしその実態は「残業時間の上限規制」については、月100時間までの残業を適法と法文化してしまいました。過労死認定ラインは月80時間です。しかも休日労働が年間の上限の例外になっています。また最も規制が必要とされている建設業・自動車運転業務・研究開発・医師については適用除外とされました。家族を過労死で亡くした「過労死遺族の会」が「過労死合法化法案」と糾弾しました。

 

  • 「一億総活躍社会」

1억총활약사회

아베는 “일하는 방식 개혁”을 1억총활약사회의 실현, 즉 저출산 고령화에 제동을 걸어 50년 후에도 인구 1억 명을 유지하면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경제활동에 참가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주요 골자로서 삼았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양한 취업” 기회를 확보하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아베 정권이 내세운 성장전략 중 하나인 일하는 시간과 일의 범위를 제한하는 “한정 정사원 제도”도 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정 정사원 제도”는 “잡형 정사원”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후생노동성에서는 “다양한 정사원”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한정 정사원 제도로 고용된 사람들은 고용 체계자체는 기본적으로 정직원과 같은 무기 고용이며 사회보험도 가입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업무 내용이나 근무지 등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업무 내용이나 근무지가 변경되면 이 사람들은 해고됩니다.

安倍は「働き方改革」を「一億総活躍社会」実現、すなわち「少子高齢化に歯止めをかけ、50年後も人口1億人を維持し、家庭・職場・地域で誰もが活躍できる社会」実現の一つの柱として打ち出しました。具体的には「多様な就業」の促進がうたわれました。

安倍政権の成長戦略のひとつとして「限定正社員」制度が盛り込まれています。

「ジョブ型正社員」とも言います。厚生労働省では「多様な正社員」という言い方をしています。雇用は基本的には正社員と同じ無期雇用で、社会保険にも加入できますが、職務や勤務地などを限定します。業務や勤務地がなくなれば解雇されます。

 

정직원과 비교하면, 수당이나 일시금, 퇴직금 등이 상당히 적습니다. 비정규 수준의 정규직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11년 후생노동성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 우정그룹이나 유니클로를 비롯해 이 제도를 도입한 기업은 벌써 절반을 넘습니다.

노동계약법 개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5이상 근무한 자는 무기한 고용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신청자를 고용하는 형태로서 지금 “다양한 정사원” “한정 정사원”제도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비정규직 수준의 노동조건으로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동일노동동일임금”이 바로 이러한 제도 하에서 활용될 것입니다.

 

正社員と比べると、手当や一時金、退職金などが相当低くなります。 非正規並みの正社員制度です。すでに日本郵政グループやユニクロなど導入している企業は2011年の厚生労働省の調査で50%をこえています。労働契約法の改正で非正規雇用労働者が5年継続雇用されると「無期転換申し込み権」を取得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

この受け皿としてあらためて「多様な正社員」「限定正社員」が注目されています。

しかしこの制度は、正社員を転換して、非正規職並みの労働条件に転落させるものとして使われようとしています。

「同一労働同一賃金」がここで使われようとしています。

 

또한 “노동자의 직업 안정”과 “지위 향상”, “완전 고용” 보장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고용대책법이 “노동시책종합추진법”으로 개악하기도 했습니다. 직업 소개나 직업 훈련에 관한 법률이, “다양한 사정에 따른 취업”, 또는 “생산성 향상”이라는 목적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여기서 핵심적 고용형태로서 일컬어지고 있는 것이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해 장소와 시간의 구애 없이 일하는 ‘텔레워크(telework)’ 제도입니다.
특히 [비고용형 텔레워크] 추진은 정부에게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육아나 고령자 수발때문에 집을 비우기 어려운 여성 노동자 등을 노동기준법 적용이 제외되는 시장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また「労働者の職業の安定」「地位向上」「完全雇用」を目的とする雇用対策法を「労働施策総合推進法」に改悪しました。

職業紹介や職業訓練に関する法律が、「多様な事情に応じた就業」「生産性の向上」を目的に変更されました。

その柱が「テレワーク」、職場と離れた柔軟な働き方、です。

とりわけ「非雇用型テレワーク」の推進は重要です。

育児や介護で家庭を離れられない女性労働者などを労働基準法で保護されない就業形態に突き落とそうとするものです。

 

  • 「生産性の向上」が「働き方改革」の目的

생산성 향상이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의 핵심 목적

 

安倍の「働き方改革」の最大の柱は、「生産性の向上」です。「最大のチャレンジは働き方改革だ。多様な働き方が可能となるように社会の発想や制度を大きく転換しなければならない。生産性革命と人づくり革命で一億総活躍だ」

 

아베가 내세운 ‘일하는 방식 개혁’의 핵심은 ‘생산성 향상’입니다.

 

최대 난간은 일하는 방식 개혁이다 다양한 근무 방식이 가능하게끔 사회의 인식과 제도를 크게 전환해나갈 필요가 있다. 생산성 혁명과 사람 만들기 혁명으로 1억총활약을 실현해나가겠다

 

「働き方改革こそが、労働生産性を改善するための最良の手段である」

そしてそれを連合と一体となって推進してきたことが重要です。

 

일하는 방식 개혁이야 말로 노동생산성을 개선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일하는 방식 개혁”을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와 함께 추진해 왔다는 것 또한 중요한 사실입니다.

 

「政労使がまさに3本の矢となって取り組んでいくことが必要である」

「生産性の向上」とは資本のために有効に使う、ということであり、「一億総活躍」とは資本の側から労働力として活用し尽くすということです。

 

노사정이 3개의 화살이 되어 함께 힘을 모아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생산성 향상’이란 어디까지나 자본을 위한 것이며 ‘1억 총 활약’ 역시 자본이 모든 노동력을 착취하겠다는 의미입니다.

 

「働き方改革」は資本による「生産性の向上」のため、成長戦略実現のために都合のいい労働市場をつくり出す、規制を壊すという本質が貫かれています。

 

‘생산성 향상’과 성장전략 실현을 위해 자본가의 입맛에 맞는 노동시장을 만들고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것이 이 ‘일하는 방식 개혁’의 주요 목적입니다.

 

  • 解雇の金銭解決制度(부당해고에 대한 금전해결제)

「働き方改革関連法」には載りませんでしたが、労働市場の構造改革にとって、安倍政権が重視しているものに、解雇規制の撤廃と国家戦略特区があります。

‘일하는 방식 개혁’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있어서 아베 정권이 특히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부당해고에 대한 금전해결제와 국가전략특구입니다.

 

解雇の金銭解決制度は、第一次安倍政権から明確に打ち出されています。

厚生労働省の諮問機関・労働政策審議会が、裁判で不当とされた解雇の金銭解決制度の創設に向けて、具体的な制度設計に入り、2019年から解決金の上限額などを議論するとされています。

 

부당해고에 대한 금전해결제에 대한 이야기는 제1차 아베 정권 시절부터 있었습니다.

후생노동성 자문기관과 노동정책 심의회는 부당해고에 대한 금전해결제 창설을 위해 구체적인 제도 설계를 추진할 계획이며 2019년부터 상한액 등에 대한 논의도 시작한다고 합니다.

 

経済同友会は、金銭水準について「賃金の半年分から1年半分の範囲内とすべきである」との意見書を発表しています。すでに「行き過ぎた雇用維持型から労働移動支援型へ」を掲げて、大企業のリストラを「労働移動支援助成金」という税金を投入して後押ししています。

 

경제동우회는 상한금에 대해 ‘임금의 반년분에서 1년반 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서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지나친 고용유지형 체제에서 노동이동지원체제로’ 나아가기 위해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노동이동지원조성금’이라는 세금을 투입하여 장려하고 있습니다.

 

 

日本では労働者の解雇に関して、戦後歴史的に積み上げてきた闘いの地平があります。

動労千葉を中心とする国鉄分割民営化解雇撤回闘争は31年の闘いの中で勝利しています。

解雇撤回の闘いは労働組合の団結の中心になってきました。

 

일본의 경우 노동자 해고와 관련해서 전후 치열한 투쟁을 벌인 역사가 있습니다. 도로치바가 중심이 되어 추진된 국철분할민영화 해고 철회 투쟁은 31년이라는 세월 끝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해고 철회 투쟁은 노동조합이 단결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また整理解雇に対しても、4つの要件を満たさなければ、「解雇権の濫用」として違法と判断されてきました。「人員整理の必要性」「解雇回避努力義務の履行」「被解雇者選定の合理性」「手続の妥当性」の4つです。こうした労働者階級との力関係を解体しようとするところに安倍の攻撃の本質があります。

 

또한 정리해고에 대해서도 4가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에는 ‘해고권 남용이라는 불법 행위로 판단하였습니다.

“정리해고의 필요성” “해고 회피 노력 의무 이행” “피해고자 선정의 합리성” “절차의 타당성”이라는 4가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해고를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노동자 계급과의 역학관계를 붕괴시키는 것이 아베의진정한 목적입니다.

 

  • 成長戦略実現のための国家戦略特区(성장전략 실현을 위한 국가전략특구)

 

2014年版の世界銀行の報告書によると、「ビジネスのしやすさ」において、日本の順位は27位です。ちなみに、1位がシンガポール、米国(4位)、韓国(7位)だそうです。

安倍政権は、海外から日本への活発な投資や柔軟な人材移転を妨げているのがさまざまな規制であり、「岩盤規制」だと攻撃しています。

 

2014년에 발표된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비즈니스 하기 쉬운 나라 랭킹”에서 일본은 27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1위는 싱가포르, 4위 미국, 7위 한국 순이었습니다. 아베 정권은 ‘암반규제’라고 불리는 단단한 규제야 말로 활발한 투자와 유연한 인재 이전을 방해하고 있는 일본에 대한 활발한 투자와 유연한 인재 이전을 막고 있는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この「岩盤規制」を破壊するやり方として安倍政権が打ち出したのが「国家戦略特区」構想でした。中でも「雇用特区」を設けて、解雇ルールや労働時間規制を破壊する手法が狙われました。

이 암반규제를 타파하기 위해 아베 정권이 생각해낸 것이 바로 ‘국가 전략 특구 ‘였습니다. 전략 특구 안에 “고용 특구”를 만들고 해고규정이나 노동시간규제를 파괴하는 수법을 노렸습니다.

 

これは大きな反発に見舞われ実現しませんでしたが、安倍の狙いをあけすけに語っています。解雇ルールに関しては、特区内の企業と労働者の間で解雇の条件や手続きを事前に労働契約で決めておけば、解雇をめぐる裁判でも契約に基づいた解雇を有効とするというものです。

 

결국 여론의 거센 비판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러한 구상만 봐도 아베가 무엇을 원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해고규정은 특구 내에 있는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서 해고조건이나 수속을 사전에 노동계약으로 결정해 두면, 해고를 둘러싼 재판에서도 계약에 근거한 해고가 인정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규정입니다.

.

労働時間規制に関しては、週40時間が上限という労働時間の規制を適用しない(ホワイトカラーエグゼンプション)というものです。国家戦略特区に指定されていた加計学園問題は、安倍の成長戦略が汚職と腐敗にまみれていることを暴き出して、安倍を追いつめています。

 

주 40시간제를 적용하지 않는 근로시간 적용 제외도 특구에서 추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국가전략특구에 지정되었던 가케이학원을 둘러싼 선정 비리는 아베가 내세운 성장전략이 얼마나 심각한 부정부패 문제를 안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 安倍政権との闘いは労働組合の問題(아베정권과의 투쟁= 노동조합 투쟁)

 

安倍首相は10月国会冒頭の施政方針演説であらためて改憲への意欲を語りました。

中曽根康弘以来の、労働組合と改憲・戦争をめぐる重大な局面に私たちは立っていると思っています。

 

아베총리는 10월에 개최된 국회 시정 방침 연설에서 또다시 헌법 개정에 대한 의욕을 보였습니다. 나카소네 총리 이래 가장 중대한 국면에 직면해 있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安倍は、連合を「成長戦略」実現のパートナーとして支配しようとしています。

その手先になっているのがUAゼンセンです。UAゼンセンはもともとは繊維産業を主とする産業別労働組合でした。

 

아베는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를 ‘성장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파트너로서 지배하려고 합니다. 아베가 통연합회를 지배하는 데 있어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US젠센이라는 노동조합입니다. US젠센은 원래 섬유산업을 주체로 하는 산업별 노동조합이었습니다.

 

それが企業と一体となってユニオンショップ協定を結び、非正規労働者も含めてまるごと労働組合に加入させる形で拡大しました。流通・情報・化学など多方面の産業を組織して、組合員160万人の連合最大の組織になりました。

 

US젠센은 기업과 함께 조합원 의무 가입제도를 맺고 비정규직 노동자도 함께 노동조합에 가입시키는 형태로 그 규모를 확대해 나갔습니다. 유통/정보/ 화학 등 여러 산업을 조직하여 조합원 160만명이라는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최대의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UAゼンセンは、改憲・徴兵制推進の右翼労働組合です。極右・日本会議がUAゼンセンを育成したと言えます。このUAゼンセンが昨年の10月の連合大会で会長に就任して連合を牛耳るという一歩手前まで行きました。

 

US젠센은 헌법 개정과 징병제를 지지하는 우익 노동조합입니다. 극우 운동단체인 일본 회의라는 단체가 이 US젠센을 육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US젠센 회원이 작년 10월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대회에서 회장으로서 임명되면서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가 완전히 우익 손에 넘어갈 뻔한 위기를 맞았습니다.

 

安倍の「働き方改革」はこれと一体で進んできたのです。しかし、「働き方改革」と安倍の改憲・戦争・国家主義に対する組合員の怒りがこれを破綻に追いやりました。

 

아베가 내세운 ‘일하는 방식 개혁’은 이 US젠센과 깊은 연관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일하는 방식 개혁’과 아베가 주장한 헌법 개정, 전쟁, 그리고 국가주의에 대한 조합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면서 이 계획은

 

 

 

連合の重大な分岐が始まっています。私たちは、この情勢の中で、国鉄分割民営化以来の新自由主義に対して歴史的決着をつける闘いが必要であると思っています。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는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철 분할 민영화 이후 급속도로 진행된 신자유주의 정책을 개선하는 투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動労千葉の解雇撤回と外注化・非正規化に対する闘いを軸に、国鉄闘争をあらためて労働者階級の結集をはかっ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도로치바가 추진해온 부당해고와 외주화, 비정규직화에 맞서는 투쟁을 바탕으로 노동자 계급 단결을 도모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また私たち合同一般労働組合全国協議会は、まだまだ弱小組織ではありますが、新自由主義の中で生きるために立ち上がる労働者とひとつひとつ結びつき、全国に闘う労働運動の拠点を建設して、闘いの陣形を作り上げ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

 

또한 우리 합동일반노동조합전국협의회도 비록 소규모 조직이지만 신자유주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와 함께 단결하여 투쟁을 확대해 나갈 생각입니다.

 

韓日の血の通った国際連帯闘争はその大きな力になると確信しています。

みなさん、どうも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저는 한일간 국제 연대 투쟁이 큰 힘이 될 것을 확신합니다. 이것으로 제 발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安倍「働き方改革」について(民主労総ソウル本部との理念交流会報告)

韓日理念交流

「働き方改革」についての報告

 

2018/11/12

合同一般労働組合全国協議会幹事

群馬合同労働組合委員長  清水彰二

 

1 自己紹介

 

群馬合同労働組合の委員長、清水彰二と申します。合同一般労働組合全国協議会の幹事、それから旭非正規職支会支援共闘会議事務局長もやっています。群馬県は東京から北へ100キロのところにあります。

合同労組というのは個人で加盟できる労働組合です。地域単位、業種単位、雇用形態単位などで組織されます。職場に労働組合がない、あっても信頼できない、非正規雇用で組合に入れない、などという理由で、合同労組に相談・加入する労働者が増えてきています。

群馬合同労働組合は結成して13年、組合員は50人余りの小さな組合です。動労千葉とともに闘える地域の合同労組を作ろうということで結成しました。私もアルバイトをしながら、組合活動をしていますが、アルバイト先で労働条件の一方的な切り下げに抗議して解雇され、闘った経験があります。

組合は中央タクシーという分会を中心に闘っています。自宅から空港まで送迎する乗合タクシーを運行する会社です。「固定残業代」という制度で労働時間をごまかし、過労死や事故で運転手や乗客を殺しかねない会社でした。パワハラもありました。3人で分会を作って闘いを始めました。組合つぶしの運転業務外し、残業手当カットなどの攻撃と闘いながら勝利してきました。

全国に同じような合同労組が組織され、2010年に合同一般労働組合全国協議会を結成しました。職場で団結して、資本と闘う労働組合を作ろうと、努力しています。

日本の法律では、職場にたった一人でも、合同労組に加入すれば、団結権が保障されます。加入通告をして、要求書を提出すれば、団体交渉を行う義務が、雇用主にはあります。拒否をしたり、不誠実な対応を行えば、「不当労働行為」として、労働委員会に救済の申し立てを行うことができます。このような権利をも活用しながら、職場に闘いを組織しています。

 

2 日本の新自由主義と労働運動の状況

 

日本における労働運動は、国鉄分割民営化を転換点として、大きく後退してきました。日本における争議行為を伴う争議の件数は、1974年の9581件をピークに、2016年66件と激減しています(厚生労働省の2016年調査による)。1989年にナショナルセンターの「総評」(日本労働組合総評議会)が解散して「連合」(日本労働組合総連合会)に合流してから、桁違いの落ち込みになりました。

「総評」の労働運動は、労働者の闘いと団結こそが、労働者の生活を守るという労働運動でした。「連合」の労働運動は、会社の発展が労働者の生活を向上させる、会社と労働組合はパートナーという労働運動です。

動労千葉は、総評時代は重要な役割を果たしましたが、連合には行きませんでした。しかし連合の中からも、外からも職場に闘いを組織しようと、労働組合と活動家のネットワークとして全国労働組合交流センターを組織しています。

連合の時代になって、労働組合から闘争が一掃されました。それから30年が経ちました。一世代が交代する時間の長さです。「労働者階級」という物事の見方、イデオロギー、団結や闘争というイメージさえ社会的に消えてしまうくらいの困難があります。

 

そもそも日本の労働組合を理解する上で、戦後の日本的経営システムがどのようなものであったのかを説明したいと思います。賃金体系は年功賃金制度でした。年齢と学歴に応じて賃金額と賃金上昇比率が規定され,勤続年数に伴って基本賃金が上昇する賃金形態です。これと終身雇用、企業内労働組合の3つを特徴として「日本的経営」「日本型労使関係」と呼びました。

国鉄分割民営化は国鉄労働者の解雇を国家が強行して、労働組合と労働者の団結を解体し、終身雇用制度を解体し、規制緩和と構造改革のふたを開けました。そういう点で国鉄分割民営化が日本の転換点になりました。

国鉄分割民営化を行った当時の首相、中曽根康弘は、右翼軍国主義者でした。戦争と軍隊の放棄をうたった戦後憲法を葬り去って、再び天皇の軍国主義国家としての再生を悲願としていました。中曽根は、それを実現するためには、総評労働運動の解体が必要であり、そのためには中心になっていた国鉄労働運動を壊滅する必要があると考えました。本人がその狙いを後に語っています。

そこで出した策が、日本国有鉄道を民営化する、いったん全員解雇するという手口でした。そのやり方は、3人のうちの1人は新会社に行けないと打ち出して、労働組合の屈服と協力を引き出すというものでした。それまでストライキ闘争の中心であった「動力車労働組合」は、自分たちの雇用を守るために、階級的労働運動から転向して、当局と一体化して他組合の組織破壊の手先に転落しました。

反対する労働組合の組合員には見せしめの不当配転と処分が乱発され、いじめが横行しました。200人が自殺に追いやられました。最大組合の「国鉄労働組合」は、ストライキひとつ決断できず、団結して闘えずに組織の弱体化をもたらしました。

もともと「動力車労働組合」の千葉地方本部であった動労千葉は、1979年の分離独立のすえに、1985年、1986年の2回にわたる渾身のストライキに立ち上がり、40人の報復解雇という犠牲を出しながら、団結と組織を守りました。

しかし、総評は国鉄分割民営化の総括ができず、「闘っても勝てない」と崩壊、連合への合流に向かいます。

国鉄を頂点に、民営化の波は、電信電話公社(1985年)、郵政公社(2005年)などに広がり、国や地方公共団体が経営するあらゆる企業、特殊法人に及んでいます。それとセットで「規制緩和」を政府、政治家が競い合う政治状況があります。英語の本来のことばderegulation の意味は規制撤廃ですが、政府は「規制緩和」と言い換えました。

それは、社会全体の徹底した外注化・アウトソーシングに道を開き、非正規職化とブラック企業化が際限なく進行する状況を作り出しています。これを資本家階級は「成長戦略」と称して、競い合っている状況です。この状況は韓国でも、世界中でどこでも、同じであろうと思います。

 

国鉄分割民営化で重要なことは、一つは、雇用破壊です。

国鉄分割民営化は、公務員である国鉄職員をいったん全員解雇するというやり方でした。公務員である国鉄職員は、争議権は制限されますが、雇用は厳しく守られていました。中曽根はこれにあえて手をつけたのです。政府が民営化と規制緩和にかじを切り、率先して労働者の解雇をやってみせるということでした。

公務員の労働組合が主力をなしていた、総評を解体する重要な意味を持ちました。

雇用破壊は、非正規職化に道を開きます。

中曽根は、国鉄分割民営化と一体で、労働者派遣法を1985年に成立させ、1986年から施行させました。対象業務を13に限定してスタートした派遣法は、適用業務の拡大を続け、1999年に「原則自由化」、2004年に「製造派遣」解禁となって、工場労働に派遣が導入されるにいたりました。

大企業は、経営戦略にアウトソーシングを組み込むのが当たり前になりました。

2008年のリーマンショックで、経営危機に陥った企業は、「派遣切り」、派遣労働者の雇止めなどで危機の乗り切りをはかりました。派遣労働者が解雇された上、寮を追い出され、ホームレス化する状況が社会問題化しました。この時に私たち合同一般労働組合全国協議会の仲間は各地で派遣労働者の闘いを組織して、派遣先でのストライキも組織して闘いました。派遣労働者を「救済してあげる」対象とするのではなく、闘いの主体として組織しようという挑戦でした。この経験は、大きな意味を持ちました。

2009年、総選挙で自民党が大敗、民主党政権が誕生します。2012年まで続きます。

この中で労働契約法が改定され、「5年ルール」として、非正規労働者に5年継続雇用された場合、無期転換申込権が与えられることになりました。今年の4月から適用になりました。しかし、実際には5年の雇用延長の直前に雇止めがされる現実、法律を無視したり抜け道を作る現実、非正規労働者が泣き寝入りさせられる現実があります。私たちは、労働組合に結集して、無期雇用を要求して闘おうと呼びかけましたが、大きな流れを作ることができていません。

派遣法は、同じ派遣労働者を3年をこえて継続派遣することを禁止する一方、人を入れ替えれば期限なしに派遣を継続できるように改悪されました。

今や日本の非正規率は37.3%です。1984年は15.3%、1989年は19.1%でした。

 

さらに日本の雇用状況をみるときに、外国人労働力を、安くて、使い捨てのきく、無権利な労働者として導入する政策があります。1990年には出入国管理及び難民認定法改訂によって日系外国人労働力導入が行われました。外国人技能実習制度による詐欺的で奴隷的な外国人労働力導入も拡大してきました。現在行われている国会では、改憲問題とともに、入管法の改訂によって、「特定技能1号」「特定技能2号」という在留資格を新設しようとしています。外国人労働者を都合よく導入して使い捨てることのできる労働力として、大規模な導入が狙われています。こうした動きは日本の労働者の不安定化、低賃金化、分断に拍車をかけています。

 

3 新自由主義を推進するべく登場した安倍政権

 

本題の安倍政権の「働き方改革」ですが、まずこのような新自由主義の流れを徹底的に貫徹するものとしてそれがあることを押さ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

安倍は極右の歴史修正主義者であることは前提にさせていただきます。

それと一体で、それを支えるものが、新自由主義による労働組合と団結の破壊です。

すでに日本の資本家階級の基本路線として、9割を非正規職化するという報告が打ち出されています(1995年日本経営者団体連盟の「労働問題研究会報告」)。国鉄分割民営化以降の31年は、民営化・外注化・非正規職化の新自由主義との、労働者の労働権と団結権をかけた闘いでした。

2001年には小泉純一郎内閣が誕生します。「構造改革なくして景気回復なし」をスローガンに、道路関係四公団・石油公団・住宅金融公庫・交通営団など特殊法人の民営化などと、「聖域なき構造改革」を打ち出し、郵政三事業の民営化を行いました。小泉内閣の経済財政政策において中心的役割を果たした竹中平蔵は「規制改革と官業の民間開放が、成長戦略の基礎である」と言いました。小泉のやり方は「古い自民党をぶっ壊して政治経済の構造改革を行う」「抵抗勢力を一掃する」という劇場型パフォーマンスでした。これは、新自由主義によって、旧来の生活基盤を破壊され、「就職氷河期」に見舞われ、不満が鬱積していた民衆の変革への期待を集め、「小泉旋風」を巻きおこしました。安倍晋三は、小泉内閣の時に、異例の抜擢をされ自民党幹事長に就任しました。

そして小泉の任期満了に伴う後継総裁として、2006年に第一次安倍内閣を発足させ、小泉構造改革を引継ぎ加速させる方針を打ち出しました。そして労働市場改革を構造改革の最大の柱の一つに位置づけました。そして第一次安倍内閣は「労働ビッグバン」を打ち出します。ここであげられた項目は、ニートやフリーターの戦力化、女性や高齢者の就業率向上、正規雇用と非正規雇用の区別の撤廃、非正規雇用に対する保険・年金の付与、「同一労働同一賃金条件」の法制化、「金銭解雇ルール」の法制化、ホワイトカラーエグゼンプションの導入、ワーク・ライフ・バランスの実現、などでした。

この構造改革の主眼は「終身雇用、年功序列という雇用形態への偏重から訣別し、同一労働同一賃金の原則の確立に取り組むべき」(竹中平蔵)というものです。

しかしこれは頓挫しました。これについて竹中平蔵は「既得権益を失う労働組合や、保険や年金の負担増を嫌う財界の反対で頓挫した」と語っています。

安倍は2007年9月に潰瘍性大腸炎を理由に首相を辞任、後を受けた麻生政権が2009年総選挙で大敗し、民主党に政権の座を奪われました。しかし2012年12月の総選挙で政権に返り咲き、第2次安倍内閣が始まりました。

 

4 安倍政権の「働き方改革」

 

  • 労働者保護規制の撤廃が本質

 

今年6月に国会で成立した「働き方改革関連法」も、第一次安倍内閣がやろうとした労働市場の構造改革の貫徹であり、その核心に労働者の保護規制と団結を解体する思惑が貫かれています。

 

「高度プロフェッショナル制度」

 

  • 「労働ビッグバン」では「ホワイトカラーエグゼンプション」と言われていた残業代ゼロ法。
  • 導入対象を年収1075万円以上の高度専門職とし本人同意を条件
  • 塩崎厚生労働大臣「小さく生んで大きく育てる」
  • 経団連は年収400万円以上と主張、年収引き下げと職種拡大を狙う
  • 労働基準法が定める労働時間・休憩・休日・深夜割増賃金などの規定の解体
  • 8時間労働制の解体狙う

 

裁量労働制の拡大

 

  • 制度の拡大を狙ったが、データの改ざんが明らかになり、撤回に追い込まれる。
  • 業務遂行方法が大幅に労働者の裁量に委ねられる職種に限って、実労働時間ではなく「みなし労働時間」で労働時間管理を行うことを認める制度
  • 導入された「専門業種型」(1988年導入の19業務)、「企画業務型」(2000年導入)のうち後者に、あらたに「課題解決型提案営業」などを加えることを狙う
  • 広く営業職に拡大する狙い。「電通」で過労自殺した女性労働者の仕事が該当。

 

同一労働同一賃金

 

  • 「働き方改革」の旗印のように掲げる
  • 労働者派遣法・パート労働者法・労働契約法に「職務内容、成果、意欲、能力または経験などを公正に評価し待遇を決定する」などの条文を盛り込む。
  • 「正規か、非正規かといった雇用の形態にかかわらない均等・均衡待遇を確保する。そして同一労働同一賃金の実現に踏み込む」(『一億総活躍プラン』)
  • 能力主義の評価制度。労働と職務遂行能力を資本の経営コンサルタントが点数をつけて賃金を決める。団結の破壊。
  • 年功制賃金の解体
  • 日本の労働者階級が勝ち取ってきた生活給としての賃金体系の破壊
  • 連合や全労連(全国労働組合総連合)も攻撃の本質をとらえず「格差是正」と評価

 

 

  • 労働者のための改革という粉飾

 

第一次安倍内閣において「労働ビッグバン」が頓挫した経歴のある安倍は、「労働者が働きやすくするための改革」という粉飾を施して、同じ目的を果たそうとしました。「一億総活躍社会」「長時間労働是正」(「残業時間の上限規制」)「同一労働同一賃金」などです。

 

  • 同一労働同一賃金

「同一労働同一賃金」はすでに触れたとおり、戦後の日本の基本形態であった年功賃金制度の解体ですが、非正規職労働者の処遇改善として押し出しました。連合、日本共産党・全労連(全国労働組合総連合)、社会民主党・全労協(全国労働組合連絡協議会)も非正規差別反対という立場から、「同一労働同一賃金」には反対していません。

 

  • 残業時間の上限規制

安倍は「長時間労働の是正」を「働き方改革」の目的であるかのように装いました。しかしその実態は「残業時間の上限規制」については、月100時間までの残業を適法と法文化してしまいました。過労死認定ラインは月80時間です。しかも休日労働が年間の上限の例外になっています。

また最も規制が必要とされている建設業・自動車運転業務・研究開発・医師については適用除外とされました。

家族を過労死で亡くした「過労死遺族の会」が「過労死合法化法案」と糾弾しました。

 

  • 「一億総活躍社会」

安倍は「働き方改革」を「一億総活躍社会」実現、すなわち「少子高齢化に歯止めをかけ、50年後も人口1億人を維持し、家庭・職場・地域で誰もが活躍できる社会」実現の一つの柱として打ち出しました。

具体的には「多様な就業」の促進がうたわれました。

安倍政権の成長戦略のひとつとして「限定正社員」制度が盛り込まれています。「ジョブ型正社員」とも言います。厚生労働省では「多様な正社員」という言い方をしています。

雇用は基本的には正社員と同じ無期雇用で、社会保険にも加入できますが、職務や勤務地などを限定します。業務や勤務地がなくなれば解雇されます。正社員と比べると、手当や一時金、退職金などが相当低くなります。 非正規並みの正社員制度です。すでに日本郵政グループやユニクロなど導入している企業は2011年の厚生労働省の調査で50%をこえています。

労働契約法の改正で非正規雇用労働者が5年継続雇用されると「無期転換申し込み権」を取得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この受け皿としてあらためて「多様な正社員」「限定正社員」が注目されています。しかしこの制度は、正社員を転換して、非正規職並みの労働条件に転落させるものとして使われようとしています。「同一労働同一賃金」がここで使われようとしています。

また「労働者の職業の安定」「地位向上」「完全雇用」を目的とする雇用対策法を「労働施策総合推進法」に改悪しました。職業紹介や職業訓練に関する法律が、「多様な事情に応じた就業」「生産性の向上」を目的に変更されました。

その柱が「テレワーク」、職場と離れた柔軟な働き方、です。とりわけ「非雇用型テレワーク」の推進は重要です。育児や介護で家庭を離れられない女性労働者などを労働基準法で保護されない就業形態に突き落とそうとするものです。

 

 

  • 「生産性の向上」が「働き方改革」の目的

 

安倍の「働き方改革」の最大の柱は、「生産性の向上」です。

「最大のチャレンジは働き方改革だ。多様な働き方が可能となるように社会の発想や制度を大きく転換しなければならない。生産性革命と人づくり革命で一億総活躍だ」

「働き方改革こそが、労働生産性を改善するための最良の手段である」

そしてそれを連合と一体となって推進してきたことが重要です。

「政労使がまさに3本の矢となって取り組んでいくことが必要である」

「生産性の向上」とは資本のために有効に使う、ということであり、「一億総活躍」とは資本の側から労働力として活用し尽くすということです。「働き方改革」は資本による「生産性の向上」のため、成長戦略実現のために都合のいい労働市場をつくり出す、規制を壊すという本質が貫かれています。

 

  • 解雇の金銭解決制度

 

「働き方改革関連法」には載りませんでしたが、労働市場の構造改革にとって、安倍政権が重視しているものに、解雇規制の撤廃と国家戦略特区があります。

解雇の金銭解決制度は、第一次安倍政権から明確に打ち出されています。厚生労働省の諮問機関・労働政策審議会が、裁判で不当とされた解雇の金銭解決制度の創設に向けて、具体的な制度設計に入り、2019年から解決金の上限額などを議論するとされています。経済同友会は、金銭水準について「賃金の半年分から1年半分の範囲内とすべきである」との意見書を発表しています。

すでに「行き過ぎた雇用維持型から労働移動支援型へ」を掲げて、大企業のリストラを「労働移動支援助成金」という税金を投入して後押ししています。

日本では労働者の解雇に関して、戦後歴史的に積み上げてきた闘いの地平があります。動労千葉を中心とする国鉄分割民営化解雇撤回闘争は31年の闘いの中で勝利しています。解雇撤回の闘いは労働組合の団結の中心になってきました。また整理解雇に対しても、4つの要件を満たさなければ、「解雇権の濫用」として違法と判断されてきました。「人員整理の必要性」「解雇回避努力義務の履行」「被解雇者選定の合理性」「手続の妥当性」の4つです。

こうした労働者階級との力関係を解体しようとするところに安倍の攻撃の本質があります。

 

  • 成長戦略実現のための国家戦略特区

 

2014年版の世界銀行の報告書によると、「ビジネスのしやすさ」において、日本の順位は27位です。ちなみに、1位がシンガポール、米国(4位)、韓国(7位)だそうです。安倍政権は、海外から日本への活発な投資や柔軟な人材移転を妨げているのがさまざまな規制であり、「岩盤規制」だと攻撃しています。この「岩盤規制」を破壊するやり方として安倍政権が打ち出したのが「国家戦略特区」構想でした。

中でも「雇用特区」を設けて、解雇ルールや労働時間規制を破壊する手法が狙われました。これは大きな反発に見舞われ実現しませんでしたが、安倍の狙いをあけすけに語っています。解雇ルールに関しては、特区内の企業と労働者の間で解雇の条件や手続きを事前に労働契約で決めておけば、解雇をめぐる裁判でも契約に基づいた解雇を有効とするというものです。労働時間規制に関しては、週40時間が上限という労働時間の規制を適用しない(ホワイトカラーエグゼンプション)というものです。

国家戦略特区に指定されていた加計学園問題は、安倍の成長戦略が汚職と腐敗にまみれていることを暴き出して、安倍を追いつめています。

 

  • 安倍政権との闘いは労働組合の問題

 

安倍首相は10月国会冒頭の施政方針演説であらためて改憲への意欲を語りました。中曽根康弘以来の、労働組合と改憲・戦争をめぐる重大な局面に私たちは立っていると思っています。

安倍は、連合を「成長戦略」実現のパートナーとして支配しようとしています。その手先になっているのがUAゼンセンです。UAゼンセンはもともとは繊維産業を主とする産業別労働組合でした。それが企業と一体となってユニオンショップ協定を結び、非正規労働者も含めてまるごと労働組合に加入させる形で拡大しました。流通・情報・化学など多方面の産業を組織して、組合員160万人の連合最大の組織になりました。UAゼンセンは、改憲・徴兵制推進の右翼労働組合です。極右・日本会議がUAゼンセンを育成したと言えます。このUAゼンセンが昨年の10月の連合大会で会長に就任して連合を牛耳るという一歩手前まで行きました。安倍の「働き方改革」はこれと一体で進んできたのです。

しかし、「働き方改革」と安倍の改憲・戦争・国家主義に対する組合員の怒りがこれを破綻に追いやりました。連合の重大な分岐が始まっています。私たちは、この情勢の中で、国鉄分割民営化以来の新自由主義に対して歴史的決着をつける闘いが必要であると思っています。動労千葉の解雇撤回と外注化・非正規化に対する闘いを軸に、国鉄闘争をあらためて労働者階級の結集をはかっ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また私たち合同一般労働組合全国協議会は、まだまだ弱小組織ではありますが、新自由主義の中で生きるために立ち上がる労働者とひとつひとつ結びつき、全国に闘う労働運動の拠点を建設して、闘いの陣形を作り上げ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

韓日の血の通った国際連帯闘争はその大きな力になると確信しています。みなさん、どうも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新しい世界」の展望が見えた韓国訪問!

 

 

動労千葉訪韓団として4回目の韓国訪問

2018年11月9日、群馬合同労働組合を代表して、私(委員長清水)と須永副委員長が、動労千葉訪韓団の一員として韓国を訪問。11・10「チョンテイル烈士精神継承全国労働者大会」やAGC旭硝子の全員解雇と3年4ヶ月にわたって闘う旭非正規職支会との交流・連帯行動に参加した。
4年連続4回目のソウルの労働者大会。
1回目2015年11月はセウォル号沈没事件責任追及などパク・クネ政権打倒の民衆総決起闘争の激しい実力デモだった。放水銃直撃で農民のペク・ナムギ氏が殺された。主導した民主労総ハン・サンギュン委員長は後に逮捕、2年6ヶ月の獄中闘争を闘って今年奪還された。

2回目2016年11月は100万人のロウソクデモだった。パク・クネ大統領弾劾のデモは、陸軍のクーデターも計画される中、ついに大統領を監獄に送り込んだ。
3回目2017年11月はフェイブックで交流していたサムチョクの仲間たちと具体的な交流が始まった。
そして4回目の2018年11月。5月に旭非正規職支会支援共闘会議を動労千葉を中心に結成し、私は事務局長として日本での支援連帯行動に関わってきた。

大統領府前の路上で前夜祭に参加

11月9日第1日目の夜。大統領府(「青瓦台」)前で非正規職労働者などの前夜祭が行われるとのことで行ってみた。大統領府の目の前。この4車線道路の2車線を占領し、トラックが横付けにされてステージが組まれている。回りにはろう城テントがずらりと並ぶ。民衆のろうそくデモが生み出したムン・ジェイン政権。2016年のデモの中で私はムン・ジェインがしゃべるのを見た。そのムン・ジェインは空約束ばかりで、労働者の生活と権利は何も変わらない。とりわけ非正規労働者は不当に解雇されたまま、路上で、高空でろう城闘争を続けるしかない現実。「積弊清算!」「非正規職撤廃!」をスローガンに労働者の怒りが高まっている。それは大きな力で大統領府を揺るがしていた。
この集会場で、私たちは多くの仲間と会うことができた。チョン・テソンさん。チョン・テイル烈士の弟さん。日本から来た私たちに色々話してくれた。期待してくれているのが痛いほどにわかる。キム・キョンネさん。去年の労働者大会の前夜祭でサムチョクの仲間として紹介してもらった太平洋セメントの非正規労働者。旭硝子とともに高空ろう城を闘った同志だ。勝利して職場復帰を果たした。ばったり出会って抱き合って喜んだ。キム・ジョンギさん。律動グループ「宣言(ソゴン)」のメンバーで動労千葉との国際連帯行動でおなじみだ。彼女には旭非正規職支会訪問にも通訳として同行してもらうことになる。
21時頃から「闘争文化祭」は食事と飲み物が出される。大統領府前の路上を占拠して「飲み会」というところだろうか。4年目の私は仰天する力関係の転換だ。

 

 

6万人が結集して労働者大会

11月10日第2日目。民主労総ソウル本部にて、動労千葉訪韓団の結団式。総勢100名に近い訪韓団だ。民主労総ソウル本部から手厚い歓迎を受ける。
午後3時からソウル市庁前の労働者大会。
この集会を報じた「労働と世界」紙から引用する。

全国労働者大会6万人参加
“積弊清算!労組する権利!” 社会大改革を叫ぶ

太平路(テピョンロ)を埋め尽くす…

 

全国民主労働組合総連盟(民主労総)は11月10日午後3時,ソウル太平路(テピョンロ)で6万人の組合員および市民社会と民衆連帯単位の参加者が集まった中”全泰一(チョン・テイル)烈士精神継承2018全国労働者大会”を開いて△弾力勤労制期間拡大阻止 △最低賃金法原状回復及び追加改悪阻止 △ILO核心協約批准及び労動基本権保障労動法全面改正 △公共部門まともな不正規職正規職転換 △財閥積弊清算と財閥改革 △司法積弊と親財閥官僚積弊清算 △社会安全網強化とまともな国民年金改革などを政府と国会に促した。

ここに民主労総(キム・ミョンフン委員長)は来る 21日ソウルを含む全国で、‘積弊清算! 労組する権利! 社会大改革!’をスローガンでゼネスト·総力闘争を宣布した。
民主労総キム・ミョンフン委員長は大会挨拶を通じて “政府と国会は労動者の要求を執行しなければならない義務と責務とは反対に, 資本家の要求である弾力勤労制拡大をやろうとしている”と “包括賃金制廃止, 交代時間と休憩時間蝕む無料労動根絶, 法廷労動時間例外業種制度廃止, 5人未満事業場労動基準法適用, 新規雇用創出方案を論議することを提案する”と明らかにした。

また “民主労総は財閥体制の清算と司法壟断勢力の処罰だけが私たちが求める真のロウソクのあかり、世の中であることを明確に宣言する”としながら“心を一つにしっかりと凍えた手を温めて聞いた2年前のろうそくが、もう一度韓国社会の新たな枠組み作り改革へと進むように支持と声援を集めてほしい”と国民に訴えた。

マレーシアから連帯しに訪韓したアナ・ロスディアナ(サラワク山林庁労組)活動家は“インドネシア、ネパールなどアジア活動家が3日間滞在して得た結論は非正規職、外注化、労働基本権弾圧と、同じ問題に直面していること”としながら“超国籍資本に対抗して国際連帯を強化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話した。

民衆共同行動の朴錫雲(パク·ソクウン)代表は”社会的弱者ではない民主労総が民衆と連帯して朴槿恵(パク·グンヘ)グループを追い出したにもかかわらず,労働者や民衆の暮らしが改善せず,今も生存権が踏みにじられているのが問題”“ろうそく政府が最低賃金法を改悪して弾力勤労制を拡大する誤った労動政策に対して労動者·都市貧民·農民たちがまた世の中を変えて行こう”と力説した.

公共運輸労組イ・テウイ副委員長は”ジョブワールド労働者たちは’子会社’という差別を拒否し,完全な正規職である直接雇用獲得のためストライキ闘争を展開しており,昨夜,会社側の屈辱的な提案を拒否し,頑強な闘争を決議した” としながら“公共機関、社内下請け、間接雇用、特殊雇用などの労働者が12日からムン・ジェイン大統領に‘100人面談’を要求して共闘を展開するだろう”と力説した。

建設産業連盟の金慶信(キム·ギョンシン)副委員長は”文在寅(ムン·ジェイン)大統領が批准を約束し,労働基本権と労組する権利について公約し,政権が変われば変わるだろうと思っていたが,労働者が労組できるようにするのがそんなに難しいことなのか。過程は公正で結果は平等だという言葉だけでなく,約束を守れ”と促した。

金属労組シンスンミン首席副委員長は“ムン・ジェイン政府は2年6ヶ月が過ぎる間最低賃金1万ウォン公約をひっくり返して、与党は算入範囲と追加改悪まで試みて21日まで弾力勤労制拡大を処理するといっている”としながら“積弊清算と社会大改革を政府と国会に任せては何の進展もないので民主労組が先に立って21日ゼネスト闘争をやりとげよう”と声を張り上げて話した。

大会参加者は‘ゼネスト決議文’を通じて△ILO核心協約批准と労働法改正、国民年金改革と非正規職撤廃△弾力勤労制、最低賃金法、規制緩和法改悪など阻止△公共部門における非正社員の一方的で異常な子会社への雇用強力阻止△労働者民衆の力で直接韓国社会大改革のために総力闘争することを決議した。

大会の終わった後参加者達は大統領府と東十字閣首相公館、2つの方向に行進し,大会を終えた。

この日の大会には甲乙オートテク(イ・テヒ支会長)·KTX(キム・スンハ支部長)·双竜車(キム・ドクチュン支部長)が一緒に登壇し “私たちは勝利したが闘いは続いているし, 私たちの闘いは労動者の権利を守る闘いだから最後まで共にする”と共同で労働者大会開始を宣言して目を引いた。

また、参加者は生存権を叫んで高空座り込み中である木洞(モクトン)のファインテック煙突座り込み(ホン・キタク、パク・ジュノ),全州タクシー(キム・ジェジュ)労働者と映像通話を通じて闘争状況を共有した。

一方民主労組は21日ゼネスト・総力闘争を控えて14日から20日まで大統領府噴水台の前で民主労組役員および加盟産別組織代表者が座り込みに突入する。12日から16日までは”非正規職を辞める”というスローガンで非正規職労働者が”労働者100人,大統領面談”を求めて共同闘争を繰り広げ,16日には全国単位事業長代表者決議大会が青瓦台サランチェの前で開催される予定だ。

亀尾(クミ)の旭非正規職支会闘争現場訪問

 

第3日目の11月11日㈰。やっと旭非正規職支会の闘争現場へ訪問することができた。韓国・亀尾(クミ)市にあるAGC旭硝子韓国工場前のテントだ。組合結成に対する請負会社全員解雇と闘って3年4ヶ月、工場門前にテントを作り、壊されてもまた作り、毎日毎日出勤闘争・門前闘争を続けている。
コレイル(韓国国鉄)のムグンファ号に乗って、ソウルから3時間半ほど。遠い。だが値段は安い。
クミに着くと、チャホノ支会長、オスイル副支会長、民主労総慶北(キョンブク)本部教育局長ペテソンさんが迎えに来てくれた。
チャホノ支会長。彼は2003年から金剛化繊という会社で565日の廃業闘争を闘った。刑務所生活を終えてクミの非正規労働者の中に身を投じた。やっと請負会社で組合を作ったら1ヶ月で請負会社ごと切られた。彼は10月4日から9日まで来日してもらってずっといっしょに行動した。1ヶ月ぶりだが、彼と会えるのは最高にうれしい。彼は「日本で会った時よりうれしい」と言った。
オスイル副支会長は、2017年4月から27日間の高空断食ろう城闘争をソウル光化門広告塔で闘った同志だ。広告塔に登ってから自分が高所恐怖症であることに気づいたという。
ペテソンさんは、後で知ったが、ハンサンギュン委員長のもとで民主労総本部組織争議室長に抜擢され、解雇された旭硝子の非正規労働者に「皆さんはとても運がいい。一生に一度、あるかないかの機会だ。労組をすれば新しい世界が見えるだろう。」と話してその気にさせた人だ。民衆総決起闘争を指導した罪でハンサンギュン委員長とともに収監され、1年6ヶ月の獄中闘争の末に奪還され、今は慶北(キョンブク)本部教育局長の役職だ。
まず工場とテントを案内してもらう。路上に作ったテント。すきま風が入る作りだが、屋根は金属板で、暖房も完備。壊されると次はもっと頑強に作ってきた。炊事もできるし、食料もカンパが絶えない。
クミで一番うまいという店でフグのチゲ料理をごちそうになる。うまかった。闘争資金が困難なのに、と、恐縮してしまう。
テントには支会の仲間が総結集してくれた。前日にはソウルの労働者大会に参加したばかりだったが、日本から来た、AGC旭硝子東京本社で抗議闘争を繰り返してくれている同志だと、大歓迎された。
うれしかったのは何より、旭非正規職支会の同志ひとりひとりの決意と困難を聞くことができたことだ。チャホノ支会長に何が一番大変か、質問してももいいかと聞くと、彼がみんなに聞いてくれた。子供に希望通りに進学させてやれない、彼女がいるが結婚を待ってもらっている、など、胸が痛い話ばかりだ。でもこうやって直接話を聞くのは、文字を読むのとはまるで違う。血が通う。
ペテソンさんから、なぜみなさんはここまで連帯してくれるのか、と問われる。こちらも思い思いに答える。その熱意と考え方は伝わったんだろうと思う。労働者は国と民族をこえて団結できることを確かめることができたのだと思う。
日本の労働者階級の闘いはこれからだ。私たちは必ずこの日の連帯行動を力に変えるだろう。

民主労総ソウル本部で理念交流集会

 

第3日目の11月12日。民主労総ソウル本部にて理念交流集会。日本からは私が「安倍政権の『働き方改革』について」報告した。
韓国の労働者同志にわかるように話さ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だいぶ苦労した。持ち時間は通訳入れて1時間。日本人で韓国在住7年の学生さんがうまく通訳してくれたので大変助かった。
時間もギリギリで収まり、韓国の労働者からいくつもの質問を受けた。とても有意義だったと思っている。日本の同志からも、体系的でよかった、自分はこう思う…など、報告後、色々話しかけられたので成功だと思っている。新自由主義と闘う路線の問題でもあり、ぜひみなさんにも読んでもらいたい。

大統領直接面談を求め、大統領府前で闘争

 

4日目の11月13日。この日は午後3時すぎの飛行機で帰国だ。労働者大会で宣言されていたように、前日の12日から旭非正規職支会、韓国GM非正規職支会、現代起亜自動車非正規職支会などの非正規労働者を中心に大統領に非正規職撤廃を求めて、100人の直接面談を要求する闘争が繰り広げられた。初日の9日に前夜祭がもたれた場所付近にさらにテントろう城が広がろうとした。これに対してムン・ジェイン大統領は警察の弾圧で応えた。フェイスブックで旭非正規職支会の同志がケガをして病院に運ばれたこと、テントの搬入が阻止され、ビニールを布団代わりに数十人が寒さに耐えながら夜を明かしたことを知った。
サムチョクの反原発闘争の仲間と再会し、いっしょに闘争現場に向かう。現場で旭非正規職支会の同志たちと再会を喜ぶ。チャホノ支会長が司会で全体をまとめる。彼の招きで私と須永副委員長も集会の中に入ることができた。
この後、5日間にわたって、闘争は大統領府、検察庁、国会前と、首都ソウルを席巻する。労働者も毎日何人もの病院送りを出しながら、必死で闘った。闘いは続いている。日本の私たちに何ができるか。闘う労働組合を全国に建設する、組織拡大で力ある勢力として登場する、まずはここに命がけで挑むことだろう。
労働者はひとつ。ともに闘おう!

富士ゼロックスは1万人リストラ撤回せよ!台湾の仲間と本社に抗議申し入れ!

富士ゼロックスは1万人リストラ撤回せよ!台湾の仲間と本社に抗議申し入れ!

10月23日から富士ゼロックスの1万人リストラ方針に反対して無期限ストライキに立ち上がった台湾富士ゼロックス労働組合。彼らの思いを託されて、上部組織の桃園市産業総労働組合の書記・吳嘉浤(ウー・チャホン)さんと通訳として王雅芳(ワン・ヤパン)さんが11月2日の夜に来日、動労千葉・全日建関西生コン支部・港合同などが呼びかける11・4全国労働者総決起集会などで台湾富士ゼロックス労働組合の闘いの支援を訴えた。

 

 

台湾の本社と4つの倉庫を拠点にして、倉庫をピケットで封鎖して闘われた無期限ストライキ。富士ゼロックス資本は、資材を海外から空輸するなど、金に糸目をつけずにストつぶしに総力をあげた。そうした中、台湾富士ゼロックス労働組合は11月2日22時をもっていったん無期限ストライキを収束させ、さらに大きな闘いに備える決断をした。

 

こうした中で、台湾から来日した2人と、合同一般労働組合全国協議会は、11月5日、東京・六本木の東京ミッドタウンにある富士ゼロックス本社に対する抗議と申し入れ行動に立ち上がった。群馬合同労組からも清水委員長が全国協議会の先頭に立った。

台湾富士ゼロックスでは975人の従業員のうちの約3割の300人の「削減計画」(解雇だ!)が打ち出された。日本に整理解雇の4要件というものがあるように、台湾でも黒字の企業にリストラ解雇など認められていない。台湾の富士ゼロックスはずっと黒字だ。本社の大号令に従ってるだけの台湾富士ゼロックスは労働組合との交渉からも逃げ回り、不誠実な対応に終始している。無期限ストライキはやむにやまれぬ闘いだ。

11月5日朝、インターネットで事前に打ち出した行動なので、東京ミッドタウン前にはすでに警備車両が待ち構えていた。「敷地の外でやってください」という警備に従い、朝8時からビラとマイクで宣伝を始める。ウーさんがマイクで訴える。「富士ゼロックスのリストラは台湾だけの問題ではない。日本の労働者もいっしょにストライキで闘ってください!」心からの叫びは東京のオフィス街にこだました。

 

 

9時に宣伝行動を切り上げ、富士ゼロックス本社への申し入れ行動に移る。台湾富士ゼロックス労働組合の「申入書」(ならびに合同一般労働組合全国協議会の申入書)を本社に届けるのが目的だ。富士ゼロックス本社は、富士フイルムHD、富士フイルムといっしょに富士フイルムHDが所有する東京ミッドタウンウェストビル内にある。1階受付は、共通の受付になっている。

回りにはすでに警備関係の背広の男たちがそこここに配置されている。まずこの受付で要件を告げ、担当者の面会を求める。ところが、3人の受付の女性は、「面会はできかねます」との対応。「それはないでしょう。担当者が言うならまだしも、なぜ受付の方にできないと言われなければいけないんですか?」受付の女性たちも途方に暮れて、横の方にいた上司の顔を見ている。ヒソヒソと指示を出しに行く上司をつかまえる。「あなたが責任者ですか?」しぶしぶ認める。名前と所属を聞くがなかなか話そうとしない。追及すると富士ゼロックスの社員ではなく、ビルの管理会社の社員だと言う。じゃあなおさらおかしい。富士ゼロックスに話をしに来たのに、管理会社がなぜダメだと言うのか?アポなしで大勢で押しかけたから、という。じゃあどうすれば会えるのか?それに従うから条件を提示させなさいと返す。答えられなくて黙ってしまう。そんな感じでワーワーやり取りをして押し込んでいく。しかしらちがあかない。じゃあ座って待つしかない、と座り込む。台湾の2人を先頭にこの日いっしょに行動した日本の仲間全員が座り込む。台湾で富士ゼロックス労働組合が座り込んだように。ビル管理会社の責任者に寄り添って指示を出していた「副責任者」が責任者に「警告を出すように」と促し、責任者が「不退去である。警告する」と繰り返す。すぐに警官隊20人ほどが隊列組んで入ってくる。冗談じゃない。警官隊の隊長に事情を話す。台湾から従業員の要請書を携えてきたのに、受付で取り次ぎもしない、こんな非常識あるか?と。隊長も頭を抱えてしまう。「それはそうだが、110番があったから…」。会社として、会えないなら会えないと、ちゃんと対応しろと要求しているところだから、警官隊は外に出せと要求すると、外に出した。結局、富士ゼロックスは本社総務部が受付の電話で対応することになった。通訳の王さんががんばる。「会わない」「受け取らない」の一点張りの本社総務に対して、「台湾の400人の組合員を代表して来ています。それではだめです!」と。最終的に、「では申入書を受付に置いていきます!」と通告。電話は一方的に切れる。申入書を受付に置いて、申し入れの一行は引き上げる。

「こんな大きな会社がこんな非常識な対応しかできない。何が怖いのか?」台湾の仲間が言う。「今日は日本のみなさんが、こんなにもいっしょに闘ってくれた。これからもさらに大きな連帯をお願いします。必ず勝利します!」

 

 

 

 

台湾の2人はこの後、動労千葉、韓国民主労総ソウル本部訪日団30人とともに、理念交流集会に参加。この日の闘争の報告をし、国際連帯についての意見交換と交流を深めた。

 

 

 

 

2000年にJR東海・葛西敬之らとともに「四季の会」を作り2006年の第一次安倍政権発足を支えてきた古森重隆。第1次安倍内閣時代にNHKの経営委員会の委員長に就任してNHK改革と称して安倍のメディア支配の重要な土台を敷いた男。この古森が2018年ゼロックス社を買収して、富士フイルムHDの完全子会社化し、新たに富士ゼロックス社の会長の座につくや、打ち出したのが従業員の2割にあたる1万人削減方針だ。しかし二つの問題が古森を危機に追い込んでいる。ひとつは、ゼロックス社の株主がニューヨーク州上級裁判所に提訴し、4月27日に買収差し止めを認める仮処分が下された。もうひとつが、古森の1万人削減方針に対して、台湾富士ゼロックス労働組合がストライキで反対闘争にに立ち上がったことだ。日本の改憲阻止・安倍打倒の闘いが結びついた。国際連帯の力で安倍・改憲・戦争と新自由主義に立ち向かおう。

 

無期限スト支援を訴え台湾富士ゼロックス労組の上部団体が11・4に来日! 11・5富士ゼロックス本社申し入れ行動に結集を!

無期限スト支援を訴え台湾富士ゼロックス労組の上部団体が114に来日!

115富士ゼロックス本社申し入れ行動に結集を!

 

2018年11月1日

合同一般労働組合全国協議会

 

10月23日から無期限ストライキに突入している台湾富士ゼロックス労働組合。日本の本社が打ち出したリストラ1万人削減計画で台湾で1000人の従業員のうち300人の解雇が狙われている。組合の要求は「仕事権」(労働権)の保障である。1000人の従業員のうち400人が団結して5つの拠点で闘っている。ピケを張り、暴力的な破壊や、個別の切り崩し・脅しをはねのけて闘っている。10月30日には日本交流協会前に100名を越える組合員が結集し、仕事権を保障せよ!と声をあげた。富士ゼロックスは不誠実な対応に終始し、上部団体の桃園市産業総労働組合や弁護士の団体交渉出席も認めない。何としても仲間の解雇を許さない闘いとして10月31日でストは9日目を迎えている。

諸悪の根源は日本本社だ。台湾富士ゼロックス労働組合は日本の労働者の支援連帯を求めている。この呼びかけに動労千葉、合同一般労組全国協議会、全国労組交流センターが応え、連帯のメッセージを送った。台湾富士ゼロックス労働組合はさらなる支援連帯を呼びかけるために11・4全国労働者総決起集会(正午・日比谷野外音楽堂)に上部団体の桃園市総労働組合の仲間を派遣することを決定した。合同一般労働組合全国協議会は、来日する仲間と、富士ゼロックス本社に対して抗議・申し入れをともに闘うことを決定した。11・4全国労働者総決起集会に集まり、国際連帯の力で戦争と改憲をぶっとばし、安倍を打倒しよう。

 

合同一般労働組合全国協議会は、11月5日(月)、桃園市総労働組合の仲間とともに富士ゼロックス本社へのビラまき・申し入れ行動に立ち上がります!ぜひ結集をお願いします!

 

【集合場所・時間】

11月5日(月)午前7時45分 地下鉄六本木駅8番出口集合

 

★富士ゼロックス本社行動の後、桃園市総労働組合の仲間は午後1時から千葉市のDC会館にて開催される日韓理念交流会に参加の予定です。可能な方はこちらもご参加ください。

 

台湾富士ゼロックスの組合員が23日を期し無期限ストライキに突入!

台湾の富士ゼロックスの労働者が昨23日から無期限ストライキ突入です!台湾の仲間からぜひ日本の労働者に伝えてほしいとメッセージを託されました。断固連帯を!拡散を!日本の富士ゼロックス本社に対する抗議の声を!

 

台湾富士ゼロックスの組合員が23日を期し無期限ストライキに突入した!

日系企業富士フィルムは今年(2018)一月にオフィス事務機を専門的に運営するアメリカゼロックスを買収するとともに、全世界で約8千5百名の社員をリストラという消息が出た。台湾の富士フィルム労働組合によれば、台湾子会社は今回の業務合併により2020年までに全社員975名の中に約30%に当たる300人を解雇するということになる。実際に、年初のリストラ消息が出てから、既に50人あまり会社側に呼ばされ、自動離職法案を受けた。今でも多数の中高齢の社員は解雇リスクに露出している。そこで、労働組合は会社側と交渉して労働権利を確保しようとした。
台湾富士ゼロック労働組合の組合長によれば、労資双方は2017年6月から団体協約による交渉をし始めたが、そのとき主に台湾北部五股と龜山に位置する富士ゼロックス工場移転の問題について交渉した。だが、一年経っても、何の進展もない。それだけではなく、会社側は密かに社員に工場移転同意書に署名し、労働組合と協力しないように要求した。これを見るだけでも、会社側は労働組合と交渉する誠意は全くないことを分かる。しかも、会社側はその後労働部に不当労働行為裁決を申請した。今年七月、 台湾富士ゼロックス労働組合は会員大会を開き、長引いて進捗のない交渉過程に終止符を打つことに合意した。それと共に、公文書を会社側に出す傍らに、ストライキ計画を具体化しようと乗り出した。 台湾富士ゼロック労働組合によると、会社は明らかに台湾不当労働行為裁決法(勞資爭議處理法)第8条「労資争議は調停、仲裁、または裁決する間、労働者側は労資争議事件を理由にストライキ、または他の争議行為を起こしてはならない」を利用し組合がストライキすることを阻止しようとする。
労働組合は会社が社員を不当解雇する意志があること、労働部に不当労働裁決を申請したことに抗議するため、今月八日からストライキ投票を起こした。22日夜投票結果が発表され、全体労働組合員407人の中に、投票人数は377人、318人ストライキに同意し、58人不同意、1人無効票だった。つまり、同意票は全体組合員の78%を占め、半数同意を超えたので、合法なストライキ権を勝ち取った。すぐさまに、台北ヘッドクオーター、そして台北三重、台中、高雄三か所にある倉庫は一斉にピケットラインを設置した。
10月23日午前、労働組合は記者会見を開き、正式にストライキを公表すると共に、会社側に社員の労働権について、労働組合と交渉するように呼びかけた。
組合長鄭炎によると、会社は今年一月に年齢、賃金などを基準にシニア社員を中心にリストラと進めるとともに、社員に現法律で定めるものよりいい条件で自発退職法案を出した。けれど、その法案たちは労働基準法の基準を満たされたものだけだった。
その後、会社はまた前言を取り消し、今まで一度もリストラを言及したことがないと言った。しかし、このリストラは台湾を含め13個のアジア太平洋支社で執行するように上級は命令を出した。なのに、会社側は沈黙を固守し続けた。
組合長鄭炎によるとまた、今年だけでも台湾富士ゼロックスは労働基準法違反として23回も処罰され、それ数は台湾での企業ナンバー3だ。具体的に、残業時間は法定時間を上回り、残業代未支払いなどだった。
今回ストの最も重要な要求は会社側と交渉することにより組合員の働く権利を確保するシステムを構築することだそうだ。将来組合員を解雇する場合、事前に労働組合の許可を得なければならない。

 

台湾富士ゼロックス 労働組合ストライキ声明書

使い捨てと見なされるのを拒否する!団結闘争が唯一の道
我々は台湾富士ゼロックスの社員だ。12年前(2006年)日本富士フィルムは台湾の中信グループ(CTBC Financial Holding Co)傘下の台湾富士ゼロックスを買収した。そのとき従業員の権利に損はないと宣伝したが、ただ二年経ったところでリストラを敢行した。多数の社員は事務所に呼ばれサインして会社を出ていけと命令されたり、派遣職に転落するようになった。中年失業は本当に労働者に起こる最悪の悪夢だ。その後労働組合を立ち上げたが事態を挽回するのにはもう手遅れだ。そのとき立ち去った同僚の様子はいまも我々の心に深く残った。そして、我々はもう一度同じ場面に迫られようとしている。
我々は営業、技術、そして庶務という3大業種でなりたっている。仕事をする時背広を着る。ヘッドクオーターは台北の繁華街のビルで子会社も高雄の時代富豪というビルにある。我々は社会でいうホワイトカラー労働者で、オフィスで反抗心がないという話をよく聞く社員だ。我々の専門は事務所で書類処理に関するサービスだ。我々は一所懸命に働いている。営業マンはクライアントを取るのに必死だ。だが、業績が悪くなるとほかの業務に移動するよう命令され、適応に支障が生じた場合、不適任で辞退を迫る。庶務社員は命を削って深夜まで残業をした。ところが、上司はそれを残業として認めなかったせいで過労は闇に埋もれた。技術社員、つまりエンジニアの運命は24時間お客のために待機することだ。そのせいで、多数の同僚は機械を修理し続けたところ脳梗塞になった。しかし、産業災害認定においてもわざと人を困らせた。富士ゼロックスはエコなどの事業を通し社会企業の賞を数々受賞した。だが、見た目きれいな商標の裏側に労働基準法を繰り返し違反し、その頻度は台湾で指折りのブラック企業だ。
皮肉でも、我々は無数の会社に効率と専門をもたらしたが、今は消耗品として捨てられる岐路に立たされている。
十年前会社は我々にリストラのあと賃金を上げてやると話したことがある。だが、十年経った今でも賃金は上がっていない。それどころか、十年後の今日は富士フィルムは61億ドルでアメリカの富士ゼロックスを買収した途端、全世界で1万人リストラ計画をすぐさまに打ち出した。毎年4億ドルの人件費を削減するのが目的だった。資本家の眼中に利益しかなく、労働者は犠牲を余儀なくされた。台湾富士ゼロックスは黒字を上げているのにも関わらず、300名、つまり全社員の30パーセントのリストラを‘配分’された。その後、会社側は大量の社員の勤務評定を大幅に過低評価し、B-と評した。社員は今不安の毎日を過ごしている。今回のリストラ計画について、会社側は今まで一度も台湾富士ゼロックス労働組合と交渉したことがない。日本の親会社の命令一つで、台湾の労働者は犠牲をしいら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日本と台湾は外交において友好な関係にある。けれど、日本の資本家は植民地の考えで台湾の労働者を対しているのか?
活路を求めるために、我々はただ自分の仕事場で革命を起こすしかない。93%の投票率、組合員全体の78%がストライキに賛成した。我々は共同でこの難しい決断をした。親愛なるお客様、私たちの立場をわかってください。我々が成功し、本当に良質なサービスを提供できるように願う。台湾各地にある組合員、団結しよう。私たちは遠くにある日本の財閥に運命を左右されることを拒否し、自分の未来を掌握しよう。対等交渉をしろ!日本資本は植民地扱いをやめろ!日本の同志たちにも呼びかける!労働者には国境はないだ!私たち台湾人労働者のストライキに支持を送ってください!

ヒロシマ集会での韓国・城西工団労組委員長のアピール

 

被爆73周年8・6ヒロシマ大行動が、広島現地で開催され、群馬合同労組からも参加して、ともに声をあげました。

前日の5日には、広島市東区民文化センターホールで「国際反戦反核集会」が開催され、韓国・大邱(テグ)を中心に、城西(ソンソ)工団労働組合、迎撃ミサイル・サード配備阻止を闘うソンジュ住民対策委員会、民衆行動の仲間たち11名、イラク戦争従軍で息子を亡くしたアメリカの反戦の母・シンディシーハンさん、アメリカ・サンノゼ平和と正義センター、イラクの医師、パレスチナ・ガザからなど、たくさんの海外の仲間が結集してくれました。すべての結集・発言がすばらしいのですが、韓国・テグにおいて、群馬合同労組と同じように地域で労働者の組織化を進めている城西(ソンソ)工団労組のキムヒジョン委員長のアピールは、これからの労働運動の前進、国際連帯闘争の前進にとって、とても重要なので、許可を得て、ここに紹介させていただきます。

 

南北、米朝首脳会談以後韓国労働運動の現況と課題

城西工団労組委員長・キムヒジョン

こんにちは。韓国、大邸(テグ)、城西(ソンソ)工団労働組合委員長のキム・ビジョンです。

トウジェン(闘争)でごあいさつします。トゥジェン!

毎日、一触即発の戦争の危機の下で、どのように韓国で生きているのか心配している同志たちが多いはずです。でも韓国の人々は、もう戦争に馴染んでしまったような感じです。

私が幼かった時、北朝鮮軍が攻め込んでくるといって、家ごとにラーメンをはじめ食べ物を買い占めたことを思い出します。その後にも「平和のダム」(※)を建設するといって、国全体が大騒ぎになった記憶もあります。最近、北朝鮮で核弾頭ミサイルを発射したというニュースまで…。しかし朝鮮戦争終戦後65年の間、戦争はなく、一言で言うなら、もう韓国の人々は戦争に無感覚な状態です。

しかし、星州(ソンジュ)・ソソンリに配備されたサードについては、北朝鮮のミサイルを防御でき、朝鮮半島が脅威から守られるとして配備に賛成し、米軍が撤退すればすぐ戦争が起こると言って、「アメリカを通じた戦争抑止力」に寄りかかっているのが現実です。こ.れは「コメディ」のような親米反共思想が根深く打ち込まれたことが原因でしょう。

イミョンバクとパククネ大統領が、この親米反共主義を利用して戦争の脅迫で労働者民衆を弾圧してきたとすれば、ロウソク以後に誕生したムンジェイン政権はとても洗練された方式でやってきています。

わずか数年前、パククネが「統一大当たり」(訳注:統一で北朝鮮の安い労働力と韓国の技術力が結合すれば韓民族経済は大発展するという論)を前面に出してきた時、人々はその実現の可能性に多くの疑問符を投げかけました。そしてさほど時がたたないうち開城(ケソン)工業団地は閉鎖されましたし、南北関係は急速に冷却化しました。このパククネの「統一大当たり」論はムンジェイン政府でパッと花を咲かせています。

全国経済人連合会、大韓商工会議所など資本家団体と各種研究機関は、南北経済協力に対するバラ色の展望を、毎日のようにばらまいていて、鉄道、電力、電機、セメントなどいわゆる南北経済協力の主は、すでに好況を享受しています。朝鮮半島平和の裏面には、韓国資本主義の北朝鮮進出と陸路を通じた中国、シベリアまでねらう資本の利害が代弁されているのです。

しかし労働者民衆の生活は決してたやすくはいきません。

2014年4月16日、304人が、「じっとしていなさい」という国家を信じて待ち、海に沈められました(セウォル号事件)。彼ら・彼女らは、大半が労働者民衆の子どもたちでありましたし、国家は彼ら・彼女らの死を隠すことに汲々としました。

また、最近明らかになったパククネ政権とヤンスンテ大法院長が共謀した司法壟(ろう)断により、双龍(サンヨン)自動車、KTX非正規職闘争、鉄道ストライキ、全教組非合法化など、数多くの労働者が血の涙を流しました。

ロウソクで当選したというムンジェイン氏は、大統領当選と同時に非正規職であふれる仁川(インチョン)空港を訪問し、「公共部門100%正規職転換」「最低賃金1万ウォン」を約束しました。ムンジェインの人気は一時89%を超えたりもしました。それと共に、自分を信じて1年間だけ待ってくれと言いました。引き続き労使政大妥協が必要だとして、「社会的合意主義」を前面に押し出しました。1年の問に、強固な路線の組合は壊し、労使協調的な組合は抱き込んで、労使政大妥協を試みようとしたのです。

このようなムンジェイン政権に対する不徹底な階級的認識が、ムンジェイン政権と対話をするという候補を民主労総執行部に入れることになりました。

同志たちがご存知のとおり、ムンジェイン政権は昨年、最低賃金を2けたの率で上げたというのですが、その最低賃金には賞与金と食費・交通費をはじめとする福利厚生費を含ませました。

世界最高の長時間労働を変えると言って、労働時間短縮を前面に出しましたが、週40時間制でなく週52時間制が法制化されましたし、手当は削減されました。日本も最近「働き方改革」により、月100時間、年間720時間まで超過労働が可能なように許容して、高所得専門職は労働時間規制自体をなくしてしまったという話を聞きました。この法は賃金柔軟化、労働柔軟化の道をより一層拡大すると思います。

全教組は相変らず法外労組で、双龍(サンヨン)自動車では30番目の犠牲者が出ました。相変らず75メートルの煙突の上にファインテックの労働者が、この蒸し暑さにかかわらず267日目の籠城闘争をしており、ヤンスンテの司法壟断で発生した犠牲者は、相変らず路上に追い出されて闘争しています。

城西(ソンソ)工業団地には6万人の労働者が仕事をしています。高齢の労働者、女性労働者、移住労働者が中心になっています。彼ら・彼女らは大半が最低賃金水準の賃金に置かれていて、低賃金だからこそ長時間労働をしなければ暮らすことができません。

ムンジェイン政権が、最近自身の公約である最低賃金1万ウォンに「速度調節」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っています。南北首脳会談や北・米サミットのニュースも見ることができない状況にある城西工団労働者にとっては、「朝鮮戦争の危険が消えて、南北の平和がくる」という期待どころか、最低賃金の約束も古草履のように捨てるムンジェイン政権に対する期待も見出すことはできないと思います。

朝鮮半島の平和を話しながら、酷暑の戦場のような死の現場で仕事をする労働者、出入国取り締まり班の係員の踏みにじる暴力の下で苦しむ移住労働者がいて、果たしてムンジェイン政権の平和は誰のための平和でしょうか?

同志たち。

「平和」といっても、誰かを排除する平和、平和を話しながら一方で死の戦場に追い詰める平和は、私たちは拒否します。

南北首脳会談以後、イジョンソク前統一部長官は、「労働組合のない韓国の労働者=北朝鮮の労働力」と言いました。そして中小企業中央会をはじめとする資本家階級は、北朝鮮労働力が、最低賃金引き上げと労働時間短縮、少子化傾向によってますます若い労働力が減って人手不足が深刻化する中で、大いに役に立つと主張しています。韓国の資本家はよだれを流すほかないでしょう。事実上、非識字率0%で最高の勤勉性を持っている北朝鮮労働力は、資本家には最高のプレゼントであるわけです。

このような時、労働者階級は揺らぐことなく闘争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世界的経済危機は労働者階級に闘争を要求しています。

寒い冬、韓国を明るくしたロウソクのあかりは、資本主義の矛盾を明らかにすることには失敗し、新自由主義政権を誕生させました。労働運動を改良化させる社会的合意主義、内容は影も形もない形式だけの民主主義は、結局資本と政権の食欲による結果を表わすだけです。

「労働のない民主主義」「労働のない平和」を暴露して、自由主義勢力に反対する先進的な活動家の闘争と連帯、一歩進んで世界的連帯が必要です。

韓国の闘争歌の、「九十九回敗北してもただ一度の勝利」という歌詞(※)のように…資本主義が平和をもたらすことはできず、労働者の階級的連帯なしで新しい社会は成り立つことができません。したがって九十九回敗北しても最後のただ一度の最終勝利のため、共に闘っていきましょう。トゥジェン!

 

(※)「平和のダム」:1986~87年、ソウル五輪を前にして、当時のチョンドファン軍事独裁政権は、北朝鮮の北漢江上流ダム建設による「ソウル水攻め」の脅威をキャンペーンし、これを防ぐものとして「平和のダム」が建設された(87年2月着工、1989年1月1次完工)

 

(※)韓国の闘争歌の歌詞:「行け!労働解放」の歌詞(原曲はアンジェイ・ワイダ監督の映画『鉄の男』(1981年)で使われ有名になったポーランド連帯労組の歌)。

九十九回敗北しても ただ一度の勝利 ただ一度の勝利

バリケードを越え 越えて ついに労働解放へ

やむことのないわれらの闘争 誰もわれらを止めることはできない

労働者と資本家の間には 決して平和はない

偉大な労働 そのたくましい腕 機械を止めて 開け歴史を

血に染まった旗 労働者の軍隊 行け!労働解放

 

5月26日旭非正規職支会支援共闘会議結成集会が大成功

5月26日東京亀戸文化センターで開催された旭非正規職支会支援共闘会議結成集会は70人の参加で成功。とてもいい出発ができました。

結成集会では、群馬合同労組の清水彰二委員長が、支援共闘会議の事務局長に就任しました。よって群馬合同労組のブログでも当面、旭非正規職支会の闘いや支援共闘会議の情報などもアップしていきます。

主催者の開会あいさつに続いて、テグ文化放送という地方テレビ局がつくったメーデー特集の「時々刻々」という番組のビデオを上映しました。番組はチャホノ支会長を招いて、旭非正規職の1000日の闘いを労働者の目線で追ったすばらしいものでした。これに日本語の字幕をつけたものを上映しました。ぜひみなさんにも見てほしいと思います。

そして旭非正規職支会の仲間から送られてきたビデオメッセージ

そして20分の基調報告は群馬合同労組の清水委員長から。

 

 

5・26旭非正規職支会支援共闘会議結成集会 基調報告

2018年5月26日 群馬合同労働組合執行委員長 清水彰二

みなさん、こんばんは。群馬合同労働組合という、個人で加盟できる地域合同一般労働組合の委員長をしている清水と申します。準備会の事務局を代表して基調報告をさせていただきます。

先ほどテグ文化放送の「時々刻々」という番組のメーデー特集のビデオをご覧いただきました。大きな流れは説明されていました。そしてどういう労働者が闘っているのか、ビデオメッセージで、一人一人の顔、声、思いをわかっていただけたと思います。

職場を転々とし、最低賃金ギリギリの賃金で、土日も休めない、風邪を引いても休めない、昼食時間は20分、ミスをすると懲罰で赤いチョッキを着せられる。文句を言おうものなら解雇が待っている。労働組合なんて縁のない世界と思っていた、そんな請負・非正規労働者が、ついに旭硝子の韓国法人で労働組合を結成しました。3年前の5月29日、あと3日でちょうど3周年になります。職場の力関係が一変し、事務所の前で「民主労組を死守して人間らしく暮らそう!」と皆でスローガンを叫び、会社の朝礼に組合の朝礼が取って代わりました。しかしそれから1ヶ月、旭硝子韓国法人・旭硝子ファインテクノ韓国(AFK)は、労働組合ができた請負会社GTSと共謀して、まだ6ヶ月も残っていた請負契約を突然破棄、これを受けて請負会社GTSは全員に整理解雇通告をしました。メンテナンスの一斉休暇と偽って工場から全員閉め出した上に、メール一本で178人を一斉解雇したのです。2回に渡る「希望退職」という金による切り崩しにも負けずに、23名の組合員が解雇撤回・職場復帰を求めて闘っています。工場前テントを拠点に毎日朝昼夜と工場前や街頭にたって、闘っています。労働者の闘いがあるところ、どこにでも出かけていって必死で毎日闘っています。

本日の旭非正規職支会支援共闘会議の結成は、何よりも一日も早く、彼らの解雇撤回をともに勝ち取る決意をうち固めるものです。

これほどまでにわかりやすい不当解雇、組合つぶしの不当労働行為がなぜいまだに解雇撤回できないのでしょうか?「時々刻々」のビデオにもあったとおり、不当解雇された旭支会の労働者は、雇用労働庁、日本でいえば労働基準監督署への告訴を行いましたが、雇用労働庁も検察も動きません。模様眺めと責任放棄で、労働者の激しい怒りを浴びています。労働委員会への救済申立も行いました。地方労働委員会は棄却、中央労働委員会は一部救済命令でした。しかし会社が救済命令の取り消しを求めて、裁判に訴え、一審、二審と負けました。

一番大きいのは、韓国では、たとえ組合つぶしの不当解雇があったとしても、その場合責任を問う「使用者」というのは直接の雇用主に限定されてしまうという問題があります。親会社と子会社の請負契約に問題がなければ、親会社が子会社にどんなに悪質な解雇をやらせても、雇用関係がないということで親会社は

免罪されてしまうのです。おまけに旭硝子は子会社を廃業させてしまいました。中央労働委員会で一部救済命令が出ましたが、実は肝心のこの下請会社の解雇の責任を親会社に認めるかという点では、棄却の判断をしています。親会社に対して、解雇の責任は認めないが、組合活動に対する支配・介入はあった、だから、「正当な労働組合活動が萎縮または侵害する行為をしてはならない」「労働者の生活の安定と再就職などの支援対策を用意」せよとの命令でした。これを会社が不服として起こした救済命令取り消し裁判では、その中途半端さとごまかしを突かれて、敗訴してしまいました。これでは親会社は、子会社に労働組合ができても、子会社をつぶしてしまえば、自分の責任は問われないことになってしまいます。請負(偽装請負)の労働者は永遠に労働組合が作れない。団結権がないのと同じです。

あるインタビューでチャホノ支会長は、20代は正規職で、30代は廃業で職場を失い、40代は下請非正規職として暮らしていると言いました。また亀尾(クミ)市では、1990年代は労働者集会をすれば2,000人が集まったが、現在は100人集まるのも難しいといいます。

日本では国鉄分割民営化から嵐のように始まった新自由主義、世界中を飲み尽くしていった新自由主義が、韓国でも、労働者から職場を奪い、仕事を奪い、労働組合を奪っていきました。たくさんの労働組合、労働者がこれに対して、命をかけて闘いました。しかし雇用は破壊され、大量の非正規労働者・請負労働者が生み出されました。正規と非正規の分断が労働者の団結を奪い、奴隷のように低賃金で文句も言わず働かざるをえない状況が広がっています。

2004年亀尾(クミ)市にある金剛化繊という会社の廃業に対して、工場を占拠して闘った労働者の一人がチャホノ旭非正規職支会支会長です。彼は、1年7ヶ月の工場占拠を一歩も工場を出ずに闘い、その後9ヶ月の獄中闘争を闘いました。出獄後、「つぶれた亀尾(クミ)地域労働組合運動をよみがえらせる」と、迷わず旭硝子の非正規職場に入りました。苦節6年、ついに労働組合結成の展望が見えたとたんに、旭硝子はチャホノ支会長の部門の整理解雇に突っ込んできました。しかし、これに旭硝子の請負労働者は組合結集でこたえました。度肝を抜かれた旭硝子は、請負会社をまるごとつぶすというやり方を取るしかなかったのです。旭非正規職支会の労働者は、歴史の扉をひとつこじ開けていまがあります。

そしていま、旭非正規職支会の前に立ちはだかる、組合つぶしの不当労働行為と、親会社の「使用者」性を認めないという法律の壁です。「時々刻々」のビデオの中でチャホノ支会長は「集団解雇事態を事実的に決定したのは日本本社にいる人たちです」と言いました。そして旭硝子東京本社は「韓国旭硝子と旭硝子グループは別法人だ。他の法人について話す言葉はない」とコメントしています。

日本の私たちに今求められているのは、こんな不正義の張本人が、日本の旭硝子資本そのものであることを徹底的にはっきりさせて、日本において、旭硝子を追及し、組合つぶしの不当労働行為の責任を取らせるということに他なりません。

今日ここに集まった私たちの力はまだまだ小さいです。しかし私たちがやろうとしているのは、単なる支援ではありません。

旭支会の組合員アン・ジンソクさんのインタビュー記事があります。彼の希望は、日曜日くらいは休みたい、それだけでした。労働組合なんてとんでもない、作ればすぐ解雇されるだけだと思っていたといいます。断れずに参加した組合の説明会で、民主労総組織争議室長がこう言ったそうです。「皆さんはとても運がいい。一生に一度、あるかないかの機会だ。労組をすれば新しい世界が見えるだろう」と。ふつう選択権はこちらにあるので、説明を聞きに来てくれた人に対して弱い姿を見せるべきなのに、堂々として、自信ある態度だった。「それで、深く考えた。そうだ、やってみよう。私もその新しい世界を一度見ようと」心を決めたそうです。

ここにいる私たちも、とても運がいいのだと思います。こんなすばらしい旭支会の仲間たちと団結してともに闘う機会に恵まれました。そしてそれは間違いなく、韓国と日本の労働者が民族も国境もこえて、新しい世界を見ることになると思います。

旭非正規職支会の仲間たちの解雇撤回の闘いは、「整理解雇撤回!非正規職撤廃!労働3権完全保障!」を実現する闘いです。これは世界の労働者階級の最先端で、新自由主義を打ち倒す闘いに他なりません。資本家階級が国境を越えて結びつき、労働者階級の生き血を吸って生き延びることに対して、労働者階級の国際的団結でこれを打ち破り、新しい世界をつくりましょう。

 

ここで旭硝子という会社がどういう会社か、確認しておきたいと思います。

「旭硝子」。三菱財閥・岩崎一族が1907年に作った会社で、戦前は『旭玻璃』(あさひはり)という名前で日本軍軍用物品を納品しながら植民地の国民を強制的に徴用して戦争犯罪に加担した企業であることが2012年になって明らかになりました。

現在ガラス業界の売上高で世界2位。業界は高い寡占状態が続き、主要各社は世界シェアの争奪をかけてグローバルな世界戦略を展開しています。旭硝子は、日本・アジア、欧州、米州、3極体制をベースに30を超える国と地域でグローバル事業を展開しています。旭硝子ファインテクノ韓国はTFT-LCD(薄膜トランジスタ液晶ディスプレイ)用ガラス基板の製造を行う、その中の重要な拠点です。2004年に設立され、資本金の67パーセントは旭硝子が握り、社長は山崎幸男という日本人です。会社設立にあたり、「投資協定に関する覚書」を慶尚北道(キョンサンブクド)及び亀尾(クミ)市と、旭硝子が締結しています。旭硝子が慶尚北道経済と地域社会の発展に寄与することを約束するのを条件に、慶尚北道・亀尾市は旭硝子に15年間の地方税減免、34万㎡の土地の50年にわたる無償賃貸契約などを約束するというものです。しかし旭硝子がやっていることは何でしょうか?地域に貢献どころか、まるで植民地のように、おいしいとこ取り、労働者を低賃金で休みも取らせず搾り取り、使い捨て。たまりかねて労働組合を作ったら組合つぶしの不当解雇です。みなさん、これは日本の私たちが決着をつけることです。必ず旭硝子に責任を取らせましょう。

 

さて、私たちが、このたび、旭非正規職支会支援共闘会議を結成するにいたった経緯について、お話します。

韓国民主労総とのソウル本部を窓口とした、動労千葉との国際連帯事業がスタートしたのは2003年。アメリカによるイラク侵略戦争に対して、世界中の労働者が怒りと危機感で闘いを開始していました。イラク侵略戦争は朝鮮侵略戦争につながると、その先頭に立っていたのが、民主労総でした。交流の中で、動労千葉を中心とした日本の国鉄闘争の意味を理解し、連帯と交流が始まります。以来毎年の11月全国労働者総決起集会に民主労総ソウル本部の訪日団が参加をし、ソウルでの労働者大会に動労千葉を軸とした日本の訪韓団が参加を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以来、現場レベル含めた交流と団結が深まります。

2015年7月14~18日に、解雇されて間もない旭非正規職支会の組合員が日本の旭硝子本社に抗議するために来日しました。そして今年2月21日~3月9日にも3人の組合員が来日、動労千葉が受け入れ体制を取り、私たちもともに闘いました。この経験と交流の中から、旭硝子本社を攻める恒常的な支援共闘組織を立ち上げようという機運が生まれました。

旭非正規支会が立ち上がってからのこの3年間は、韓国での労働者の闘いが前進・発展し、それがついに全民衆の総決起・ろうそく革命となってパククネ政権を打倒するという地平を打ち立てました。その地平の上に、今、南北首脳会談と「板門店宣言」があります。

ろうそく革命の力こそアメリカ・トランプ政権による朝鮮侵略戦争の狙いを打ち破っています。アメリカこそは朝鮮戦争休戦協定をも踏みにじって、日米安保同盟をも基礎に、一貫して朝鮮半島を核の戦場にする体制を強化し、その支配の元に組み敷いてきた元凶です。戦後世界支配の危機にたつアメリカは、トランプの登場によって、核の先制使用も含めた「斬首作戦」の強行によって、再び朝鮮半島を戦場にしようとしてきました。

これに対して、民主労総の労働者を先頭に、韓国の民衆は、アメリカと一体のパククネを打倒、パククネ、イミョンバクという二人の元大統領を監獄に送り、「積弊清算」をかかげて、あらゆる領域で古い支配体制との闘いに立ち上がっています。ムンジェイン政権のもとでも、サードの配備を阻止すべく、旭支会の仲間も含めて、ソンジュの路上に座り込んで、戦争を止めています。

旭支会の解雇撤回の闘いは、このろうそく革命後の「積弊清算」の大きな柱です。ろうそく革命が社会の主人公が労働者民衆であることを示したにもかかわらず、請負・非正規労働者が首を切られたままである現実、これを支える法や体制を現場労働者の闘い・団結の力でひっくり返す闘いです。まさに労働の現場で、新自由主義を実力で打ち倒していく闘いであり、この力で戦争を止めようという闘いでもあります。

5月21日、ハンサンギュン民主労総前委員長が、拘束されて2年半ぶりに釈放を勝ち取りました。民主労総は声明でなぜハンサンギュンが3年の実刑を受け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か、について「簡単な解雇、一生非正規職を強要したパククネ政権労働改悪を防ぐためにゼネラルストライキをした罪、 反民主・反民生・反労働のパククネ政権に屈服することなく 13万民衆総決起を組織・指揮した罪、 セウォル号の真実を解明するためのパククネの車の壁を突破するために全身を投げた罪」だとしました。ハンサンギュン前委員長は「労働尊重の世の中は労働者の団結した力で実現しなければ蜃気楼に過ぎないということを忘れずにおこう」「労組の組織率30%・600万労総時代のために、未組織・低賃金非正規職労働者と共にする1人の組織担当者になる」との出獄の決意を明らかにしています。歴史はまた大きく動き出しました。

 

旭非正規職支会支援共闘会議の活動について提案したいと思います。

  • 旭非正規職支会への支援・連帯・交流を広げ、深め、一日も早い解雇撤回のためにともに闘う。
  • 旭硝子が行った不当労働行為を日本において広く暴露・弾劾して、旭硝子を許さない世論を形成する。SNSやインターネットを活用する。
  • 幅広く、支援共闘会議の組織を拡大して、日本における支援共闘陣形を強化する
  • 旭硝子本社、工場などへの申し入れ行動・宣伝行動などを組織する
  • 旭支会の日本遠征闘争をサポートする
  • 旭非正規職支会が作成した本『野の花―工団に咲く』を広める
  • 支援カンパの取り組み

必要なことは何でもやろう、という精神で、みなさんとともに進んでいきたいと思います。

 

最後に私たちは、旭非正規職支会の労働者の闘いに真に連帯するために、日本の労働者民衆の責務として、安倍政権による改憲を絶対に許さない闘いをつくり出すこと、そして動労千葉を先頭に新たな局面に入った国鉄闘争を軸にしながら、日本の労働運動の闘う新たな大きな潮流を作り出すことを誓いたいと思います。それは改憲翼賛に右旋回しつつある連合との対決を作り出すこと、それを旭硝子の工場の中からも実現することです。非正規職撤廃の闘いを、旭非正規職支会の闘いから学びながら、必ず作り出しましょう。

旭非正規職支会の闘いの持つ力を、私たちが形に変えることで、そうした飛躍を実現し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ぜひとも、みなさん、旭非正規職支会支援共闘会議に加入し、そして広めてください。どうぞよろ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

 

山本弘行議長

小泉義秀副議長

金元重さん

動労千葉・佐藤正和さん。集会には田中康宏委員長はじめ動労千葉から多数参加。

日本板硝子共闘労組

鈴木コンクリート工業分会・吉本さん。

なんぶユニオン・宮里さん。

事務局次長・鎌田さん。

 

旭非正規職支会・支援共闘会議結成宣言

 

日本の旭硝子の韓国法人・旭硝子ファインテクノコリアは、非正規職労組結成1ヵ月後の2015年6月30日、メール1本で178人の労働者に対し集団解雇の暴挙に及んだ。旭非正規職支会は日本の旭硝子本社の責任を徹底的に追及すべく、2015年7月14~18日および本年2月21~3月9日の2回にわたり日本の遠征闘争に決起した。この遠征闘争を全力で支援する中から、支援組織立ち上げの機運が生まれた。

 

旭非正規職支会の闘いは外注化、非正規職化、子会社化・転籍、偽装請負、違法派遣など日本の労働者が直面する闘争課題と全く同じだ。

私たち自身の闘いとして、旭硝子資本を社会的に追い詰める街宣や諸々の要請・弾劾行動を積み上げ、旭非正規職支会の解雇撤回・職場復帰を必ずや実現していこう。

 

安倍政権は連合を改憲勢力に変質させようと必死である。しかし、日本の労働者階級はこのまま唯々諾々と改憲に賛成し、戦争に加担していく存在ではない。

旭非正規職支会の闘いは日本の労働者の魂を捉えることは間違いない。日本の旭硝子の職場に、旭非正規職支会と共に闘う労働者の組織をつくり出すことは全く可能なのだ。

 

旭硝子は、日本帝国主義の植民地時代の1907年、朝鮮人労働者を強制徴用し「軍艦島」を経営した三菱資本の系列によって設立され、軍用物品を納品しながら肥え太り戦争犯罪に加担して行った。そして再び2005年に、法外な特恵と劣悪な労働条件を拠り所として、旭硝子ファインテクノコリアという子会社を韓国亀尾(クミ)市に設立したのだ。この歴史を踏まえ、私たち自身が日本の地で、労働運動の変革をめざし非正規職撤廃、改憲・戦争阻止の大運動を職場・地域から作り上げ、安倍政権打倒の闘いを推し進めて行かねばならない。

 

『われわれは、非人間的な待遇を受けながら働いている。辛く困難な仕事を全部任せられながら、なんでこんな扱いを受け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いつまで管理者たちの顔色を窺わ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これ以上無視されながら働くのをやめよう。労働組合を通して現場を変えよう。労働組合を作って人間らしく生きよう』(チャホノ旭非正規職支会長)

 

この変革を求める労働者の声を全国に響き渡らせ、旭非正規職支会との国際連帯の新たな一歩を踏み出す時だ。

旭非正規職支会の呼びかけに応え、可能な支援行動を臆することなく展開し共に闘う組織として成長していくことを決意する。もって本日ここ亀戸文化センターにおいて、「旭非正規職支会支援共闘会議」の結成を宣言する。

2018年5月26日

 

入会、お問い合わせは、事務局長・清水彰二まで。

〒260-0017 千葉県千葉市中央区要町2-1-8 DC会館

gungoroso@ybb.ne.jp

090-9016-0272

 

3・2韓国・旭硝子非正規職支会 支援・連帯集会へ

旭硝子は不当解雇された韓国労働者たちを復職させろ!

 

3・2旭非正規職支会支援・連帯集会

3月2日(金)午後6時開会

江東区文化センター第1、第2研修室

 

旭支会国会前行動・記者会見

3月7日(水)午後3時 衆議院議員会館前

 

 

『国際連帯』に寄稿 『訪韓行動でサムチョクとの交流と連帯深める』 

訪韓行動でサムチョクとの交流と連帯深める

 

群馬合同労組 執行委員長 清水彰二

 

 

2017年11月11日から13日まで、群馬合同労組は私を含めて3名で、動労千葉訪韓団の一員として訪韓闘争に参加した。私と須永副委員長は、2015年2016年に続いて3回目。2017年6月に加入した青年がはじめて参加した。

須永副委員長は、5年前から韓国語の学習に力を入れ、3ヶ月の語学留学はじめ何度となく韓国へ通ってきた。とりわけ古い友人であるMさんに誘われて、2016年サムチョク(三陟)市の脱原発運動との交流の旅に同行した。

サムチョク市は人口7万人、韓国の江原道にある東海岸の海辺の町。1982年に原発建設計画が持ち上がるが1998年に白紙撤回させた。ところが2010年に再び原発の建設計画がおこり、これに2014年市長選挙と住民投票で勝利して、ついに原発計画の白紙撤回を勝ちとった。サムチョク郵便局前で行われてきた水曜日集会、巡礼行進、老若男女さまざまな市民が力をあわせて闘ってきた。現在は火力発電所建設計画が持ち上がり、これとも闘いをすすめている。

須永副委員長のサムチョク訪問以降、2012年8月から毎週欠かさず行ってきた高崎金曜日行動と、サムチョクの原発反対運動との交流がはじまった。フェイスブックを通じた交流はリアルタイムでお互いの連帯を深めた。韓国・サムチョクの闘いの重要な節目には、高崎金曜日行動や群馬合同労組のデモなどでハングルでメッセージを発信して、連帯を表明してきた。逆にサムチョクから群馬・高崎に連帯行動が組織され、メッセージや激励が送られてきた。2017年6月に仲間が金曜日行動参加中に脳出血で倒れ、必死で闘病リハビリに取り組んでいることに対して、心暖まる激励が組織された。お互いの交流が、温もりのある、顔の見える交流に深まっていった。

 

 

 

今回の訪韓闘争で、サムチョクの仲間は、須永副委員長を通じて、群馬の訪韓団に対して、至れり尽くせりの受け入れ体制を取ってくれた。宿の手配から、空港への出迎え、滞在期間の食事から、全過程を通じて、行動をともにしてくれた。忙しい中、バスでソウルまで5時間もかかるサムチョクから、たった数時間の交流のために、わざわざ会いに来てくれた仲間がいた。

今回の訪韓で、とても重要だったことは、サムチョクの労働者との具体的な交流が実現できたことである。サムチョクの原発反対運動は、宗教者を中心にして、労働者も農民も市民も、老若男女がひとつになって闘ってきた。その中で、労働者はやはり重要な役割を果たしていることがわかる。サムチョクの仲間は、とりわけても訪韓した群馬合同労組の仲間にサムチョクの労働者を引き合わせたいと、今回の受入体制を取ってくれたのである。

特に、その中に2016年11月14日に動労千葉訪韓団として籠城中のテントに表敬訪問したサンピョセメントの労働者がいる(群馬の訪韓団は先に帰国して不参加)。民主労総江原嶺東地域労組東洋セメント支部の下請け労働者たちは、石灰石を採掘し、セメント生産業務を担っていたが、賃金は元請けの約40%。2014年5月に下請け会社に初の労組を結成し、翌年2月、雇用労働部が東洋セメントの偽装請負を認定、元請け正規職として雇用するよう決定した。その直後、東洋セメントは労組解体を目的に下請け会社との契約を解除し、下請け労働者101人を解雇した。以来、弾圧に屈せず、組合員23人が闘ってきた。非正規職撤廃とさけび、27日間の断食高空ろう城闘争、935日の闘争を闘い抜いて勝利、ついに正規職としてサムチョクの職場に戻るという。まさに復職のための研修期間中に今回の交流を実現できた。文字通り韓国の非正規職撤廃闘争の重要な闘いである。

他にもサムチョクの労働者を次々と紹介してもらった。サムチョクの水曜日行動の写真を見て、ここに私がいますといった具合だった。

11月12日の午前中、午後からの民主労総の大会を前に、サムチョクの仲間の案内でソデムン(西大門)刑務所を見学した。西大門(ソデムン)刑務所は、日本の植民地にされた朝鮮で、日本の植民地支配に抵抗した人々を拷問し、死刑にした極悪の刑務所。戦後はアメリカかいらいの軍事独裁政権に反対し、平和と民族統一、民主主義をのぞんだ人々を、やはりスパイにでっち上げて、拷問し、処刑した場所。それが今は博物館となって、子供連れがたくさん見学に来ていた。私たちは、案内してくれたサムチョクの仲間からこんな話を聞いた。お連れ合いがパク・チョンヒ大統領の時代にスパイにでっち上げられ、10年間の刑務所生活を余儀なくされたこと、その後再審で無罪を勝ちとり、今も政治犯の救援運動をされていること、義父はこの西大門(ソデムン)刑務所で殺されたこと…。私たちは、このサムチョクの仲間とともに慰霊塔で祈りを捧げることができた。私たちの祈りはもちろん日本人としての謝罪ではあるが、それは贖罪ではなく、力をあわせてプロレタリア世界革命をともに実現し、戦争も核も必ずやなくしてみせるという決意である。

 

 

 

https://international-center.amebaownd.com/